외국인 총수 조준한 공정위…'예외규정'에 한숨 돌린 쿠팡
공정위 기준 마련했지만, '예외 조항' 변수
논의 촉발시킨 쿠팡 김범석은 예외 충족해 동일인 지정 피할 듯
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도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국정감사마다 성토 대상이 됐던 쿠팡 김범석 의장을 겨냥한 입법 논의의 결과지만, 공정위가 마련한 예외 기준에 따르면 김 의장은 지정을 피할 수 있는 예외조건을 충족할 것으로 보여 쿠팡이 한숨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는 27일 기업집단 지정 시 동일인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내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 구체적인 판단 기준 및 절차 등을 정한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과 지침의 핵심은 외국 국적의 동일인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정한 것이다.
국적과 관계 없이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대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기업집단 내·외부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하여 활동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의 기준을 적용해 동일인 여부를 판단한다.
이러한 외국 국적의 동일인과 관련한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쿠팡의 김범석 의장이다.
쿠팡은 지난 2021년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기면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고, 올해는 자산 10조원을 넘기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실질적인 쿠팡의 지배자인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적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주식회사 쿠팡 자체가 동일인이기에 쿠팡은 총수 없는 기업집단이다.
김 의장 입장에서는 동일인 지정을 피하게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사익편취 규제에서 자유로워졌다. 동일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규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총수가 아니기에 공정거래법에 의한 공시·신고 의무와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 특수관계인과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도 면제된다.
이에 국정감사마다 김 의장이 단순히 외국 국적이라서 규제를 피하는 것이 국내 기업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이번에 공정위가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지정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다만, 새 기준이 실제로 적용되더라도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고, 법인이 동일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쿠팡에 대해서는 새롭게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가 여러 가지 있다"며 "현재로서는 쿠팡의 동일인이 누가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는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할 수 있는 '예외 조항'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외 조항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김 의장)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지 않고, ▲자연인의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임원으로 재직하는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자연인·친족과 국내 계열사 간 채무 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다는 조건 모두를 충족할 경우 법인을 동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김 의장은 최상단 회사인 쿠팡Inc의 지분만 가지고 있어 첫번째 조건을 충족한다. 한국 쿠팡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쿠팡Inc가 100% 출자했기 때문에 김 의장의 국내 지분은 없다.
또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사에 재직 중이지만, 경영에 참여하는 임원 직급이 아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도 쿠팡Inc의 주식이기에 국내 계열사 출자 문제에서 자유롭다.
예외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은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해 요건 부합 여부를 확인받아야 하므로 공개되지 않은 채무보증, 자금 대차 관계가 드러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김 의장이 동일인 지정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쿠팡 입장에서는 한숨 돌리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예외 조항을 악용한 규제 회피가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해외 상장 등으로 동일인 지정 예외 요건을 충족시킨 뒤, 자연인에서 법인으로 동일인을 변경하고, 대기업 집단에 주어지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 위원장은 "2023년 현황에 맞춰 예외 요건에 해당하는 대기업 수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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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황영찬 기자 techan9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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