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뷰] 한동훈 '불출마 승부'…희생인가 험지출마 회피인가

김주훈 2023. 12.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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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과 다른 한동훈…멋지게 싸우면 남는 장사"
리더십 상처 우려에 선제 대응…'비겁하다' 비판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2.27. [사진=뉴시스]

[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동안 정치권에서 제기된 총선 출마 시나리오와 달리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보다 국민을 최우선으로 한 '선민후사'(先民後私)라는 입장이지만, 당내에선 영남권 중진 의원 희생 압박부터 험지 출마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등 뒷말이 나오고 있다.

한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에 따라 당 주류에 대한 '희생' 요구가 재점화되고 있다. 당초 당내에선 한 위원장을 두고 선거대책위원장부터 비례대표, 지역구 출마 등 여러 역할을 제시하며 총선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비대위원장 취임식에서 "지역구도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다"며 '희생'을 약속하자, 당내에선 예상치 못했다는 평가다.

한 당 관계자는 27일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당내에서도 한 위원장의 결단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라면서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희생 요구나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와 함께 흐름을 보면 중진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 요구가 거세질 테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총선 물갈이 신호탄 vs 낙선 리스크 회피

한 위원장의 초강수에 정치권에선 총선 물갈이의 신호탄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인요한 혁신위 당시부터 거론된 영남권 중진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 요구가 이번에는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석준 의원(대구 달서갑·초선)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아무래도 영남권, 특히 대구·경북(TK)이 물갈이에 대한 어떤 우려가 있다"며 "특히 한 위원장 불출마 선언의 뜻은 제가 볼 때는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크고 무섭다"라고 밝힐 정도다.

이와 동시에 당내 일부에선 한 위원장이 수도권 험지에 출마할 경우 낙선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전략적 카드를 꺼냈다는 관측도 나온다. 비례대표 또는 소위 텃밭으로 평가되는 지역구 출마는 당 안팎에 비난을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남은 선택지는 인요한 혁신위가 제안한 불출마 또는 수도권 험지 출마다. 그러나 '수도권 위기론' 우려는 물론, 내년 총선 정부 견제론이 지원론보다 우세한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쉽게 지역구 출마를 선택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인데, 한 위원장이 준비할 시간도 짧고 자칫 잘못하면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이번 불출마 선언으로 여러 리스크를 불식시키는 효과를 낸 만큼, 결국 전략적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야권에서도 일부 제기되는 지적이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텃밭이나 비례는 체면상 요구하지 못하겠고, 접전지로 가자니 지면 타격이 크고, 그렇다고 험지 나가서 떨어지기도 싫으니 안전하게 불출마를 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경우 일찍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출마를 시사하는 모습을 보인 만큼, 한 위원장과 대비되는 행보라는 평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비겁하다' 비판에도 피한 '황교안 패배 사례'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 위원장의 불출마 카드는 차기 여당 지도자로서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여러 리스크를 피한 결과를 낳게 됐다. 당내에서 언급되는 사례는 21대 총선 당시 당내 압박으로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다. 당시 황 대표는 자신을 포함해 당내 중진 의원들을 향해 '수도권 험지' 출마를 압박했지만,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과 함께 황 대표 본인은 출마 지역구를 쉽사리 정하지 못한 탓에 리더십 상처를 입었다. 결국 등 떠밀려 출마한 종로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패배하고 모든 당직을 내려놓게 됐다.

한 위원장과 황 전 대표가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자 총선을 앞두고 당에 혜성처럼 등장한 공통점을 지닌 만큼, 당초 당내에선 "황교안 사례는 피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 한 위원장은 불출마 선언으로 수도권 출마 요구를 벗어난 동시에 중진 의원들에게 불출마 요구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지만, 선거를 진두지휘할 장수가 후면에 서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총선 위기라는 신호도 비겁하다는 비판도 모두 차단한 것"이라며 "유승민 전 의원이 불출마를 보고 '생뚱맞다'라고 말한 것도 억지 비판이 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다만 당내에서도 한 장관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만큼, 전문가들도 해석을 달리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자기 나름의 결단력을 보여준 것이자,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행보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전 비대위원장도 친이(친이명박)계 측에서 당선 후 계파를 확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공격에 불출마 선언으로 뒷말이 나오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의 행보도 '오로지 총선 승리에 올인하겠다'라는 일종의 살신성인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국민의힘 내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 압박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한 위원장이 선거를 지휘하는 장수로서 소위 '투쟁형'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예로 들면 선두에서 적장을 물리치는 장수가 인기가 있지, 뒤에 숨어서 '앞으로 가라'라고 하는 장수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며 "소위 돌격형 장수가 아닌 '독려형 장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험지에 나와 당선될 자신감이 없다'라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면서 "서울 강남 외 지역에서 당선만 될 수 있다면 선거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지만, 황 전 대표 패배 사례를 크게 의식한 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황 전 대표가 선거에 패배하는 것과 한 위원장이 패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면서 "한 위원장은 젊고 정치가 처음인 만큼, 패배하더라도 소위 멋있게 싸웠다면 지도자로서 평균점을 얻을 수 있는데 모험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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