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보다 안 들었네...'한류 간판' 남성 아이돌그룹은 왜 대중과 멀어졌나
유튜브 인기곡 톱30에 남자 아이돌그룹 딱 한 팀
찰리 푸스 등 외국 가수 노래보다 안 들어
제니 '유 앤드 미'보다 많이 재생된 '이세계아이돌'
학폭 논란 등 '실제 아이돌' 윤리적 피로 반작용
BTS 공백에도 음반 수출액 25% 증가... '녹색 성장' 과제로
①해외에서 한류를 이끄는 남자 아이돌그룹 노래보다 해외 팝송이 더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②'아담'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줄 알았던 가상 아이돌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실제 아이돌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③방탄소년단(BTS) 입대 공백으로 확 쪼그라들 거라 우려됐던 음반 수출은 지난해 대비 되레 25% 증가했다.
유튜브 음악 차트와 올해 음반 수출액 등으로 짚어 본 올해 K팝 시장엔 이렇게 이변이 속출했다.
해외에선 난리인데... '톱15서 실종' 아이러니
음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유튜브에서 K팝 남자 아이돌그룹은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일보가 올해 1월 6일부터 12월 21일까지 유튜브뮤직 인기곡 주간 차트 톱100 영상 재생 횟수를 취합한 결과, 톱15에 남자 아이돌그룹 노래는 단 한 곡도 없었다. 30위권에 진입한 남자 아이돌그룹을 따져봐도 세븐틴('손오공'·17위·4,975만 건)과 유닛그룹 부석순('파이팅 해야지'·28위·3,738만 건)이 유일했다. 두 곡의 재생 횟수는 미국 가수 찰리 푸스의 '아이 돈트 싱크 댓 아이 라이크 허'(16위·5,038만 건)와 라우브의 '스틸 더 쇼'(21위·4,585만 건)의 합산 재생 횟수를 밑돌았다. 국내 청취자들이 남자 아이돌그룹 노래보다 해외 팝송을 더 많이 찾아 들은 것이다.
음원 플랫폼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멜론, 지니뮤직 등 9개 음원 플랫폼의 음악 소비량을 집계하는 써클차트에 의뢰해 올해 총재생 횟수(1월 1일~12월 16일 기준)를 조사해보니, 톱15에 남자 아이돌그룹은 전무했다. 2022년엔 빅뱅이 '봄여름가을겨울'(7위)로, 2021년엔 방탄소년단이 '다이너마이트'(3위)와 '버터'(9위) 등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몰락이나 다름없다.
K팝 남자 아이돌그룹 노래들이 올해 인기곡 차트에서 줄줄이 밀려난 것은 음악 세계관을 복잡하게 만들고 퍼포먼스를 돋보이려는 음악에 치우쳤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여자 K팝 아이돌그룹들은 현생을 고민하고(하이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자신이 더 중요하고 강해져야 한다'며(아이브 '아이 엠', 르세라핌 '언포기븐') 보편적 이야기를 주로 노래한 반면 남자 K팝 아이돌그룹들은 팬덤과의 관계지향을 이유로 독특한 세계관을 연작으로 펼쳐 놓는 방식을 택했다"며 "대중 입장에선 K팝 남자 아이돌그룹의 음악이 어떤 맥락인지 파악하기 어려워 '이름만 들어본 그룹'으로 남게 되는 것"이라고 이 현상을 바라봤다. 음반은 많게는 1,000만 장씩 팔리는데 정작 대중이 아는 히트곡은 없는 남자 아이돌그룹의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배경이다.
그 결과 올해 국내 음악 시장은 '여자 아이돌그룹 천하'였다. 유튜브 연간 인기곡 순위 톱10 중 6곡은 여자 아이돌그룹 노래로 조사됐다. 뉴진스와 아이브가 1~3위를 휩쓸었다.
신문 사회면에 날 일 없는 '안전한 아이돌'
K팝 남자 아이돌그룹이 부진할 때 가상 아이돌그룹은 약진했다. 만화 캐릭터 같은 6명으로 구성된 이세계아이돌은 '키딩'(44위·2,504만 건)과 '록다운'(72위·1,490만 건)으로 톱100에 두 곡을 연달아 올렸다. 가상 아이돌이 연간 인기곡 차트 톱50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 '키딩'의 연간 재생 수는 K팝 간판 여성그룹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솔로곡 '유 앤드 미'(2,292만 건)보다 많았다. 가상 아이돌이 웬만한 '실제 아이돌' 못지않게 팬덤이 견고하게 형성됐다는 뜻이다.
나아가 새로운 한류 주역으로까지도 떠올랐다. 이세계아이돌은 '키딩'으로 9월 미국 빌보드 K팝 차트에서 3위를 차지했고, 또 다른 5인조 남성 가상 그룹 플레이브는 '여섯 번째 여름'으로 12월 넷째 주 같은 차트에서 19위로 등장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이세계아이돌처럼 온라인 인플루언서가 만든 가상 그룹이 가상 아이돌 유행의 새로운 경향"이라며 "온라인 밖에선 실제 아이돌보다 인지도가 낮지만 홈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온라인에선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한 특정 팬덤의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게 특징"이라고 평했다. 이런 가상 아이돌은 K팝 팬들에게 소위 신문 '사회면'에 오르내릴 일 없는 '안전한 아이돌'로 통한다. 실제 아이돌과 달리 마약 범죄나 학교 폭력 등 사생활 문제로 속 썩일 일 없다는 게 가상 아이돌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K팝 소비의 옳고 그름의 기준부터 질문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팬들이 혼란과 마주하고 윤리적 질문 앞에서 헤매는"('망설이는 사랑' 저자 안희제)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란 분석도 나온다.
역대 최고, 최다 기록 뒤 그늘
윤리적 위기와 방탄소년단의 공백에도 올해 K팝 해외 시장은 호황이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를 조사해 본 결과, 1~11월 음반 수출액은 2억7,024만 달러(약 3,500억 원)로 지난해 동기(2억1,568만 달러) 대비 약 25% 증가했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따르면 올해 음반 판매량은 1억1,817만 장을 넘어섰다. 수출 및 판매량 모두 역대 최고치다. 아시아 일변도에서 미국(5,898만 달러·2위)과 독일(872만 달러·4위) 등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올해 K팝 음반 시장 전선이 넓어진 게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K팝 기획사들은 '듣지 않는 음반'의 과잉 생산이란 비판을 받으며 환경을 해치지 않는 '녹색 성장'에 대한 과제도 떠안게 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문이림 인턴 기자 yiri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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