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은 꼭 껴안아야 스친다[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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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그런데 옷깃은 여간해선 스치기 어렵다.
옷깃은 목에 둘러댄 부분이다.
그런데 이맘때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시민들이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고 있다" 등의 기사가 자주 보여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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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김용택의 시 ‘첫눈’이다. 한 줄 짧은 시에 그리움이 녹아 있다. 어디 첫눈뿐이랴. 초겨울에 내리는 풋눈, 설날 내리는 설눈, 가늘고 성기게 날리는 포슬눈, 밤새 몰래 내린 도둑눈…. 눈은 언제 어떻게 내리든 보고 싶은 이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올겨울에도 고마운 인연들 덕분에 마음에 따스한 눈이 내린다.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 언저리를 채우는 사람이 있다. 즐거운 날에도, 힘든 날에도,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이다. 함께했던 시간이 아름다웠기에 언제든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사는 내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런 까닭에 몇몇 국어학자들은 ‘살다’와 ‘사람’을 같은 어원으로 본다. 행복한 삶은 오래된 사람이든 새로운 사람이든 인연을 곱게 이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짧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스치는’ 인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좁은 시장 길을 여럿이 오가니 팔이 부딪히고 옷자락이 닿기도 한다. 그런데 옷깃은 여간해선 스치기 어렵다. 옷깃은 목에 둘러댄 부분이다. 그러니 옷깃을 스치려면 꼭 껴안아야 한다. 누군가를 안는다는 것,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잠시 스치는 만남이라면 옷자락과 소맷귀가 어울린다. 옷자락은 옷의 아래로 길게 드리운 부분이니 누군가와 맞닿을 수 있다. 윗옷의 양쪽에 팔을 꿰는 부분인 소맷귀도 움직임이 많은 팔부분이라 스치기 쉽다.
“옷깃을 여민다”라는 말도 있다. 여민다는 건 벌어진 옷깃을 모아 단정하게 하는 행동이다. 옷차림을 고치면 마음까지 정갈해진다. 그런데 이맘때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시민들이 옷깃을 여미며 출근하고 있다” 등의 기사가 자주 보여 거북하다. 여미는 건 날씨하곤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찬바람을 막으려면 옷깃을 세워야 한다.
시인 박노해가 꿈꾼 나눔의 삶이 연말 큰 의미를 던진다. “‘나쁜’의 우리말 어원은 ‘나뿐’이고/ ‘좋은’의 우리말 어원은 ‘주는’이다/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고/좋은 사람은 나누어주는 사람이다('걷는 독서' 중).”
당신은 어떤 삶을 꿈꾸는가.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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