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국제부가 선정한 올해의 동물 10

정리/김지원 기자 2023. 12.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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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동물이 사람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다. 깜찍한 외모 때문일 수도,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일으키는 기상천외한 사건 때문일 수도 있다. 올 한 해도 다양한 동물들이 신문과 인터넷 곳곳을 장식했다. 종(種)의 경계를 넘어 인간 사회에 큰 임팩트를 남긴 동물 10마리를 꼽았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선정한 ‘2023년의 동물 10′이다.

빈대에 물린 자국/조선DB

◇1. 21세기에 돌아온 ‘빈대’의 공포

코로나 팬데믹으로 끊겼던 국가 간 왕래가 재개되면서 세계 주요 관광지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이와 함께 뜻밖의 불청객도 등장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영국 등 유럽 곳곳의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빈대가 다시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런던의 지하철 좌석에서 갈색 빈대가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영상은 전 세계를 ‘빈대 공포’로 몰아넣었다. 결국 국내에서도 외국인들이 머물렀던 숙박 업소 등에서 빈대가 나오는 등 지구 곳곳으로 퍼지면서 ‘빈대믹(빈대+팬데믹)’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세계 각국이 때아닌 빈대와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프랑스에서는 최근 빈대 퇴치 용품이라며 가짜 제품을 판매하는 사기를 치는 신종 범죄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눈이 내린 지난 2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에서 판다 푸바오가 눈밭을 구르고 있다./연합뉴스

◇2. ‘푸바오 열풍’ 주인공 판다, 중국 동물 외교 시대 끝나나

올해 국내에서 가장 핫했던 동물을 꼽으라면 단연 에버랜드의 판다 가족, 그중에서도 귀여운 외모로 사랑받고 있는 ‘푸바오’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푸바오와 사육사가 교감하는 모습을 부모처럼 흐뭇하게 지켜봤다. 20세기 중국의 새로운 친선 외교 전략이었던 ‘판다 외교’는 예전만 못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거주하며 미·중 관계 ‘희망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판다들은 계약 만료로 이달 초 중국으로 돌아갔다. 영국에 있던 유일한 판다 한 쌍도 중국으로 반환됐다. 최근 들어 중국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판다를 잇따라 회수하면서 서구권과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불화의 상징’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푸바오도 임대 계약이 끝나는 내년 7월 전에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뉴스1

◇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속 왜가리, 일본 문화 부흥의 상징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10년 만의 복귀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포스터에는 거대한 왜가리 한 마리만 그려져 있다. 작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캐릭터다. 북미에서는 아예 ‘소년과 왜가리(The Boy and the Heron)’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선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미 골든글로브 영화상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넷플릭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실사판을 만드는 등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과 문화 상품은 미 사회의 틈새가 아닌 주류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춰 꾸준히 변신해온 미키마우스(미키)와 미키의 연인 미니마우스(미니) 캐릭터. 미키와 미니는 영상 기술 발전과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등에 따라 전 세계 아이들에게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로이터 뉴스1·아마존 홈페이지·디즈니

◇4.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미키 마우스’… 디즈니 수난 시대

“모든 것은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다.” ‘미키 마우스’의 아버지이자 세계 최대 엔터테인트먼트 기업인 디즈니 창립자 월트 디즈니가 남긴 말이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디즈니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지만, 역대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에서 크게 적자가 나면서 CEO를 교체하고 강력한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또 콘텐츠에 담긴 PC(정치적 올바름)주의를 놓고 보수 성향 정치권·소비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미 공화당 대선 주자이자 디즈니월드가 있는 플로리다 주지사인 론 디샌티스는 “디즈니에게 부여된 자치권·개발권을 제한하겠다”며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100살 할아버지가 된 미키마우스의 노후는 바람 잘 날 없어 보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트위터 로고였던 '파랑새'. / AFP 연합뉴스

◇5. 일론 머스크 때문에 쫓겨난 트위터 마스코트 ‘파랑새’

지난 7월 트위터 이용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위터의 이름과 로고를 ‘X’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트위터의 상징이었던 ‘파랑새’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바탕의 거친 ‘X’가 이를 대체했다. 트위터는 2006년 설립 당시부터 파랑새를 로고로 썼다. ‘트위터(Twitter)’라는 이름 자체가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트위트(tweet)’에서 따온 것이었다. 파랑새의 복수일까. 로고가 바뀐 이후 트위터는 실적이 나날이 악화하고 광고주들이 대거 이탈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머스크의 트위터 리브랜딩(re-branding) 결정으로 최대 200억달러(약 26조원)의 브랜드 가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작가 낸 나이튼의 집 창문 난간에서 목격된 수리부엉이 플라코. 부엌 쪽 창문에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다고 한다. /낸 나이튼 홈페이지

◇6. 동물원 탈출한 ‘수리부엉이’, 뉴욕의 마스코트로

최근 맨해튼 도심 한복판에서는 높다란 고층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름은 플라코, 이 13살 수컷 부엉이는 지난 2월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가출한 이후 도심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날개를 쭉 펴면 길이가 1m 80cm에 달하는 맹금류지만, 커다란 호박색 눈과 머리 위로 뾰족 솟은 작은 귀는 뉴요커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뉴욕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건물 난간과 창문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플라코를 마주치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꽃매미./뉴욕주 홈페이지

◇7. 중국발 ‘매미 폭풍’에 한숨 쉬는 뉴요커들

플라코를 본다면 행운이겠지만, 사실 뉴욕 길거리에서는 이 곤충을 보고 비명을 지르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랜턴플라이(lanternfly)’라고 불리는 꽃매미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꽃매미는 2014년 펜실베이니아로 반입된 조경석에 붙어있던 알덩어리를 통해 ‘불법 이민’한 이후 14주로 퍼졌다. 요즘 뉴요커들은 길을 걷다가 옷에 붙은 꽃매미를 떼어내고, 보도 블록에 다닥다닥 붙은 매미들을 피해다니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징그러운 외모뿐만 아니라 농작물의 즙을 빨아먹는 유해 생물인 탓에 미국 각지에선 ‘꽃매미 퇴치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이 야생 곰 출몰에 주의하라며 공개한 반달가슴곰 사진./시마네

8. 곰은 사람을 찢어… 日 ‘야생곰’의 습격

일본에서는 올해 야생곰에게 습격당해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200명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잔인한 포식자의 정체는 흑곰·불곰이 아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반달가슴곰. 초식 비율이 높고 덩치가 왜소해 곰 중에서는 유순하다고 여겨지지만, 이상 기후로 도토리 등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민가로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올 8월 평균 기온이 30.6도로 치솟는 등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보냈는데, 이 때문에 곰들의 먹이인 식물 열매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는 높은 기온 탓에 겨울잠에 들어가지 못해 민가에 출몰하는 곰들이 늘었다. 배가 고파 사람을 해칠 수밖에 없었던 곰도, 희생당한 인간의 사정도 안타깝다. 자연의 균형이 깨지면서 벌어진 비극에 씁쓸해진다.

일본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 로고/위키백과

◇9. 오사카 삼킨 ‘호랑이’… 日 한신타이거스 우승

지난달 5일 일본 오사카에서는 그야말로 ‘호랑님 생일잔치’가 열렸다. 호랑이가 마스코트인 프로야구팀 ‘한신 타이거스’가 38년 만에 재팬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프로야구(NPB)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신타이거스 팬들은 오사카 시내 도톤보리강에 뛰어들고 눈물을 흘리는 등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오사카시 당국이 이례적으로 1300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해 통행 통제에 나서는 등 도시 전체가 잔칫집 분위기로 들썩였다.

비버를 모티브로 한 '잔망루피' 캐릭터/잔망루피 인스타그램

◇10. 두 얼굴의 ‘비버’… 한국에서는 잔망 루피, 남미에서는 파괴왕

10대부터 30대까지, MZ세대라면 이 비버를 모를 리 없다. 분홍빛 얼굴에 귀여운 앞니 두개, 깜찍한 표정으로 사랑받는 ‘잔망 루피’다. 한국에서의 높은 인기와 달리 남미에서 비버는 ‘파괴왕’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무분별한 번식으로 남미 대륙의 산림을 갉아먹으면서 황폐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비버 탓에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만 연간 최소 7000만달러(약 906억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무리 한류가 대세라지만, ‘잔망루피’의 남미 진출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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