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부채비율 478%… ‘PF 부실 뇌관 터지나’ 불안 확산

정순우 기자 2023. 12.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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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이 위치한 태영빌딩 로비 모습./연합뉴스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건설사와 부동산 시행업체가 금융권에서 빌린 PF의 연체율이 1년새 2배로 상승한 가운데,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이른바 ‘F4(Finance 4) 회의’를 열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은 시공능력평가 16위의 대형 건설사로, 방송사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현재 전국의 건설사는 약 1만2000개로, 보통 30위까지를 ‘1군 건설사’로 분류한다.

현재 태영건설의 PF 대출은 약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원래 이 돈으로 아파트·오피스를 지어 분양한 후 PF를 갚아야 하지만,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착공조차 못한 현장이 많아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크아웃 가능성이 제기되자 태영건설은 27일 공시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PF 위기는 태영건설뿐 아니라 건설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공사 자체를 하지 못해 PF를 연체하는 중소 건설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PF 위기는 건설업계에 그치지 않고, 금융업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PF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태영건설發 PF 위기 확산

주요 건설사 중 태영건설이 PF 위기의 진원지가 된 것은 부채 비율이 높고, 미착공 사업장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PF 대출은 약 3조2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미착공 상태로 남아 있는 사업장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운 47%에 이른다. 28일 480억원 만기가 돌아오는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 사업도 그런 경우다. 태영건설은 이 사업의 시공권을 갖는 조건으로 시행사가 토지 매입을 위해 조달한 480억원 PF의 보증을 섰다. 토지를 매입한 지 약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착공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태영건설의 순차입금은 약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478%에 이른다. 이 같은 부채비율은 국내 35위 내 주요 건설사 중 가장 높다.

태영건설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 노력을 해왔다. 태영건설의 지주회사인 TY홀딩스는 최근 알짜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2400억원에 매각했다. 또 태영건설은 발전회사인 포천파워의 보유 지분을 265억원에 팔아 자금을 확보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28일 만기인 480억원 상환은 문제가 없다”며 “다만 중장기적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PF부실 본격화 우려 커져

대형 건설사까지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건설업계에선 ‘PF 부실’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방은 물론, 수도권 요지에서도 한계 상황에 몰리는 개발 현장이 급증하고 있다. 그 동안 은행·증권사 등 PF를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이 만기를 연장해 주면서 근근히 버티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부지를 고급 주거시설로 개발중인 A시행사는 PF에 참여한 일부 금융사가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지난 10월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 주도의 PF 대주단 협약에 힘입어 이달 초 가까스로 만기를 늦췄다. 청담동에서 추진되던 다른 고급주택 사업도 브릿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올해 2월 토지가 공매로 넘어갔지만 수 차례 유찰되면서 지난 7월 기존 브릿지론을 연장했다. 올해 들어 시공능력 75위인 대우산업개발과 109위 대창기업을 비롯해 19개 종합건설사가 부도 처리됐다. 이달에 부도를 낸 건설사만 8곳에 달한다.

건설업계에서는 ‘지금부터가 진짜 고비’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고자 지난 4월 대주단 협약을 가동한 이후 금융사들은 이자 후취 조건으로 PF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연장해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 입장이 ‘심각한 곳은 정리한다’로 바뀌면서 만기 연장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시장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2010년대 초반에는 건설 경기가 침체하는 와중에 미분양까지 급증하면서 유명 건설사들도 도산했지만, 지금은 미분양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며 “주요 기업들은 지난 부동산 호황기때 축적해둔 자산이 있기 때문에 버텨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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