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16위 태영, 오늘 워크아웃 신청...3조대 PF 대출 감당 못해

이성훈 기자 2023. 12. 2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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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방송의 태영그룹 모태 기업
서울 영등포구 태영빌딩에 태영건설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연합뉴스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해 28일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을 신청한다. 시공 능력 평가 16위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을 하면, PF 부실 문제가 건설 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회사에서 조달하는 것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워크아웃 신청은 회사 이사회 의결 사안인데, 태영건설이 28일 이사회 일정을 잡았다”고 27일 밝혔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조건으로 만기 연장이나 부채 탕감 등을 받을 수 있다. 태영건설은 방송사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의 모태 기업이다.

현재 태영건설의 PF 대출은 약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원래 이 돈으로 아파트·오피스를 지어 분양한 후 PF를 갚아야 하지만,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으로 착공조차 못 한 현장이 많아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6일 핵심 경제 당국자 4명의 모임을 일컫는 ‘F4(Finance 4) 회의’를 열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은 최근 알짜 계열사 매각 등 자구 노력을 해왔다.

PF 위기는 태영건설뿐 아니라 건설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공사 자체를 하지 못해 PF를 연체하는 중소 건설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대출 만기를 연장하며 버텼지만,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이는 건설 업계에 그치지 않고, 금융업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PF가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태영건설이 위기에 몰린 것은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 사업 등 대출을 받아놓고도 착공조차 못 한 사업장이 상대적으로 많고 부채비율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PF 대출은 약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미착공 상태로 남아 있는 사업장 비율이 47%다. 시공 능력 평가 16위인 대형 건설사까지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서 건설 업계는 ‘PF 부실 뇌관’이 본격적으로 터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전국 건설사는 약 1만2000개로, 보통 30위까지를 ‘1군 건설사’로 분류한다. 27일 국내 3대 신용 평가사 중 하나인 나이스신용평가는 태영건설의 장기 신용 등급을 ‘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 검토 감시 대상’으로 낮췄다.

◇태영건설發 PF 위기 확산

태영건설은 우선 28일 만기가 돌아오는 서울 성수동 오피스 빌딩의 PF 대출 48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태영건설은 이 사업의 시공권을 갖는 조건으로 480억원의 PF 보증을 섰다.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착공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태영건설은 부채비율도 높다. 태영건설의 순차입금은 약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은 478%에 이른다. 국내 35위 내 주요 건설사 중 가장 높다. 태영건설은 올해 1~3분기 978억원(별도 재무제표 기준)의 영업이익을 올렸으나, 부채가 많아 수익성은 떨어진다. 이자 비용 대비 영업이익을 뜻하는 이자 보상 배율이 0.8에 그친다. 번 돈을 모두 넣어도 이자의 80%만 충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태영건설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양한 자구 노력을 해왔다. 태영건설의 지주회사인 TY홀딩스는 최근 알짜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2400억원에 매각했다. 또 태영건설은 발전 회사인 포천파워의 보유 지분을 265억원에 팔아 자금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돈으로 계속해서 만기가 돌아오는 PF 대출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회사들이 태영건설 대출 신청을 거절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태영건설의 자금 동원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PF 부실 본격화되나?

대형 건설사까지 위기설에 휩싸이면서 건설 업계에선 ‘PF 부실’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방은 물론, 수도권 요지에서도 한계 상황에 몰리는 개발 현장이 급증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은행·증권사 등 PF를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이 만기를 연장해 줘서 버티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부지를 고급 주거 시설로 개발 중인 A 시행사는 PF에 참여한 일부 금융사가 브리지론 만기 연장을 거부해 지난 10월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정부 주도의 PF 대주단 협약에 힘입어 이달 초 가까스로 만기를 연장했다. 청담동에서 추진되던 다른 고급 주택 사업도 브리지론 만기 연장에 실패해 올해 2월 토지가 공매로 넘어갔지만 수차례 유찰돼 지난 7월 기존 브리지론을 연장했다.

최근 부동산 PF 시장은 몸집이 커지는 동시에 급격히 부실화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국내 PF 대출 규모는 134조3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말(92조5000억원)에 비해선 3년 동안 약 42조원(45%)이나 급증했다. 지난해 말 1.19%였던 PF 대출 연체율은 지난 9월 말 2.42%까지 상승했다. 금융권에서는 사업 초기에 조달하는 PF인 브리지론 약 30조원 가운데 최대 15조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건설 업계에서는 ‘지금부터가 진짜 고비’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고자 지난 4월 대주단 협약을 가동한 이후 금융사들은 이자 후취 조건으로 PF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연장해 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 입장이 ‘심각한 곳은 정리한다’로 바뀌어 만기 연장을 거부당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시장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승배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은 “2010년대 초반에는 건설 경기가 침체하는 와중에 미분양까지 급증해 유명 건설사들도 도산했지만, 지금은 미분양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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