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2] 연말에 만난 전설의 밴드들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고수(高手)라고 한다. 고수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자유자재로 강약을 조절하고 자연스럽게 긴장과 이완을 배합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단순한 기교를 넘어서 그들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멋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왕년의 가요계 스타들이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경연을 펼치면서 새삼 주목을 받았다. 그중 몇몇 그룹이 연말에 합동으로 공연하였으니, 한창 활동할 때조차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된 셈이다. ‘윈터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평화’, ‘이치현과 벗님들’, ‘다섯손가락’이 뭉친 것인데, 이들이 각각 활동한 연도를 합산하면 무려 120년을 훌쩍 넘으니 그 내공과 경력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수들의 향연이라 할 만하다.
3층짜리 공연장을 빼곡히 메운 관객들은 대부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 시절을 겪은 중년들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학업의 압박과 시험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때, 그들의 노래는 안식처 구실을 해주었다. 팍팍하고 갑갑한 학창 시절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동질감이 공연장의 관객들을 하나로 묶어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원년 멤버인 임형순과 이두헌을 중심으로 최태완, 이태윤, 장혁이 뭉친 ‘다섯손가락’은 전성기를 능가하는 기량을 선보였다. 대표곡 ‘새벽 기차’를 비롯해서 비 오는 수요일 장미꽃을 선물하는 유행을 만든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동방신기’가 다시 불러 새삼 인기를 얻었던 ‘풍선’ 등을 노래해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이치현과 벗님들’은 여전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라틴 록 스타일의 ‘집시 여인’을 위시해 ‘사랑의 슬픔’, ‘다 가기 전에’, ‘당신만이’ 등을 불러 관객들에게 추억과 낭만을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사랑과 평화’는 기념비적인 펑크 음악으로 평가받는 ‘한동안 뜸했었지’와 ‘장미’ 등을 열창했다. 특히 보컬을 담당한 이철호는 무대의 이곳저곳을 누비며 힘이 넘치는 창법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추억은 항상 아름답다고 하며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는 것을 ‘무드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 한다. 공연을 관람하며 학창 시절의 우리와 편안하게 재회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전설의 밴드를 마주하며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얽히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미래의 어느 날 올해를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다사다난한 일 년을 무사히 지나온 나 자신에게 말해주기로 한다. 수고했다고, 정말 고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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