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책 선호하는 세태에 반감… 그래서 정반대로 680쪽 소설 냈다

이영관 기자 2023. 12. 2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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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광인’ 펴낸 이혁진

삼각관계, 술, 음악. 핑크빛 연애 소설로 읽히는 이 소재들이 이혁진(43)의 장편소설 ‘광인’(민음사)에선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다. 대략의 줄기는 음악하는 남자 준연, 위스키 만드는 여자 하진, 사랑에 빠진 남자 해원 사이의 사랑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소설은 술과 음악을 곁들여, 가족·예술·진실 같은 인생의 면모를 돌아보며 묻는다. 당신이 아는 사랑은 정말 사랑인가. 이혁진은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할 정도로 욕망하는 게 사랑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랑이 성적인 의미나, 남녀 간의 관계로만 좁혀져 있다”며 “이것이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라고 했다. “사랑은 욕망하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어요. 그 욕망하는 대상이 나를 선택해줘야 하고, 기꺼이 속박당하겠다는 걸 선택하는 일입니다.”

소설가 이혁진은 "쓸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쓰려고 했다"며 "원고 전체를 세 번 고쳤다. 책에 한 번에 쓰인 문장은 없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이혁진의 사랑 이야기엔 현실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 ‘광인’의 인물들은 40대에 접어들었지만 마음껏 사랑할 수 없다. 경제적 사정, 가족 관계 등 누구나 겪을 법한 이유에서다. 작년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된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 역시 은행을 중심으로 한 사랑 이야기에 학벌 등 현실의 문제를 녹였었다. 작가는 “독자들이 ‘소설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광인’의 인물들은 판타지스러울 수 있지만, 저는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시대적 상황에 처한 인물을 만들어, ‘지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선업을 배경으로 조직의 부조리를 그린 장편소설 ‘누운 배’ 등 시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온 작가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재치 있고 위안을 주는 게 아니라, 인생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고 했다. 또 “무용함의 유용함을 더 명확히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일상에서 직면하는 무력감이 있잖아요. 그럴 때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름다움을 느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책은 680쪽. 작가는 “얇은 책을 선호하고, 젊은 작가를 요구하는 요즘 사회에 대해 반감을 느꼈다”고 했다. “농담 삼아 ‘소설 쓰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도 말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일에 자신을 갈아넣고 있는데, 결국 그 사람이 사랑하는 이유와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가는 걸 경험하죠. 그래서 모든 면에서 정반대가 되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이 두꺼운 책을 한번에 읽어낼 때의 쾌감을 느끼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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