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예술이라서 죄송하지 않다고요?

한은형 소설가 2023. 1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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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신성한 것은 없다.” 얼마 전, 전시회에 갔다가 이 문구가 수놓아진 빨간 야구 모자를 사서 나왔다. 기억하고 싶은 전시라면 굿즈를 사는 게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다. 빨간 야구 모자를 쓰고 외출한 날 흥미로운 뉴스를 봤다. 내가 봤던 바로 그 전시에서 영감을 받아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건이었다. 범행자는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며 “예술을 했을 뿐”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일단 미스치프가 무엇이고,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은 무엇인지 말해야겠다. 전시의 제목이 ‘신성한 것은 없다(Nothing is Sacred)’고, 아티스트 이름이 미스치프다. MSCHF로 적고 ‘mischief’로 읽는다. ‘아이들이 하는 크게 나쁘지 않은 장난’ 혹은 ‘악동 짓’이라는 뜻. 미스치프는 2019년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설립한 아티스트 콜렉티브라고 미술관은 소개했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 나는 미스치프가 스케이트보드나 서핑을 기반으로 하는 슈프림이나 스투시 같은 서브컬처 브랜드인 줄 알았고, 그래서 요즘 대유행인 소위 세계관에 관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전시를 보고 나서 미스치프가 패션 브랜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논란도 만들기 때문이다. 검을 만들었고, 감자칩을 제조했고, 치킨버거를 배달했다. 총기 소유자가 총기를 반납하면 그걸 녹여 검으로 만들어 돌려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전시된 검이 영화 ‘라스트 듀얼’의 검만큼이나 근사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칩 이야기도 웃긴다. 인공감미료를 써서 미국에서 금지하는 식품인 말고기, 복어, 카수 마르주(Casu Marzu·구더기가 있는 시칠리아 치즈) 맛이 나는 감자칩을 만들었다. 치킨버거 이야기는 사회운동에 가깝다. 칙필레(Chick-fil-A)라는 치킨버거 브랜드는 보수적인 기독교 회사로 반(反)성소수자 정책을 지지하고 관련 활동에 기부해 악명이 높다. 일요일에 영업하지 않는 칙필레를 겨냥, 미스치프는 일요일에 배달 가능한 반경에 있는 사람에게 구매 링크를 보내 치킨버거를 판매했다.

짓궂은 장난도 있고, 야릇한 장난도 있고, 통쾌한 장난도 있었다. 이렇게 몇 년간 벌여온 장난의 행렬을 보고 즐거워져 나는 모자를 산 것이다. 그렇다. 즐거웠다. 악동 짓을 벌이는 집단이 즐겁게 하는 일 같았고, 보는 나 역시 즐거워 이들이 앞으로 어떤 장난을 칠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것은 없다’며 그들이 겨냥하는 표적에 상당히 동의해서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는 장난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는 사람과 당하거나 지켜보는 사람 모두 즐거워야 장난이고, 장난하는 사람만 즐겁다면 더 이상 장난이 아니라고. 장난에 대해 생각하며 장난기 어린 모자를 쓰고 나온 날 그 뉴스를 들었던 것이다.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며 무언가를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짓궂은 장난’이자 ‘예술’로서 그는 무엇을 했나? 빨간색 스프레이를 경복궁 담장에 분사해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을 적었다. 앨범 제목 중 일부인 ‘TEEN’을 ‘TENN’으로 적고는 스펠링이 틀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글도 남겼다. 이것들을 모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인증했다. 범행자는 다음 날 자수했다. 그러고는 구속되었다. 예술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범죄라고 본 것이다.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고 정신병력도 없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마 이 말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니 안 죄송해요. 전 예술을 한 것뿐이에요.”

한 달 전에는 미스치프 전시장의 모자를 훔쳐서 신고당했고, 그걸 중고 거래 사이트에 백만 원에 올렸고, 경찰서 앞에서 모자를 쓰고 인증샷을 찍었고, 경찰서로 들어가 모자를 돌려줬다. 구속되면서 이 사건도 알려졌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분쯤 유명해질 수 있다는 앤디 워홀의 말처럼 그는 간편하게 유명해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모자를 훔치고, 문화재에 낙서하는 행위가 대단하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난센스지만.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다가 한 번 크게 웃었다. 범행자가 남긴 “암튼 전 평소엔 그래비티? 안 하고 도벽도 없고 그래요”라는 글을 보고. ‘TEEN’을 ‘TENN’으로 적은 것처럼 ‘그래피티’를 몰라서가 아니라 웃음을 노리고 ‘그래비티’라고 쓴 건가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지만 말이다. 이렇게 장난과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했으니 그는 예술을 한 건가도 싶다. ‘예술, 뭘까?’라고 자문하며 예술의 ‘그래비티(중력)’를 체감한 기묘한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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