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람보다 나은 침팬지

송영관 에버랜드 사육사·‘전지적 푸바오 시점’ 저자 2023. 1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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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방이 있다. 왼쪽 방에는 평범한 침팬지가, 오른쪽 방에는 권위적인 대장 침팬지가 있다. 왼쪽 방엔 나무 막대를 사용해야만 열 수 있는 먹이 상자를 둔다. 도구는 없다. 오른쪽 방 침팬지에겐 오로지 도구만 준다. 침팬지는 도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한쪽 방엔 도구가 없고, 다른 방엔 도구만 있는 상황에서 침팬지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2007년과 2009년 독일과 일본에서 벌인 이 실험은 침팬지에게도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 즉 이타심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판다를 만나기 전 오랜 시간 유인원을 담당하면서 침팬지의 매력에 빠졌다. 사람과 유전자가 98% 일치하는 그 무리를 관찰하는 게 좋았다. 침팬지는 수컷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서열이 분명한 무리 생활을 한다. 그들은 정치적이고 전략적이다. 무리에서 각자 역할이 있고 생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부러 싸우기도 한다. 싸움과 화해를 통해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이다. 소란스럽지만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들의 세계를 가만히 지켜보면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그 닮은 점을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생동물 사육사로 일하다 보면 동물에게 배우는 점이 많다. 야생동물은 저마다 살아온 환경과 히스토리에 맞게 목적이 있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육사가 그 비밀을 깨달으면 은혜로운 교훈이 되고, 개인의 삶과 맞닿을 땐 사유를 낳기도 한다. 그들의 특성과 행동의 원인이 ‘생존’이라는 묵직한 목적과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육사가 야생동물에게 받는 훌륭한 선물 중 하나다.

앞서 이야기한 실험의 결과는 어땠을까. 아무 조건 없이 왼쪽 방의 침팬지에게 도구를 건네는 대장 침팬지, 이어 도구를 받은 침팬지가 얻은 먹이를 다시 무리와 나누는 이타심 넘치는 행동은 사육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이기적이고 각박하기도 한 세상에서 인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들의 세계를 지켜보면서 ‘나는 얼마나 이타적일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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