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韓美 외교 장관의 언론관 차이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의 언론관은 외교가에 익히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학부 신문인 ‘하버드크림슨’의 공동 편집장을 지냈고, 졸업 후엔 뉴욕의 한 잡지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21년 당시 여당이 추진한 언론중재법이 ‘언론재갈법’ 얘기를 들었을 땐 방한해 “언론이 가짜 뉴스에 맞서 가드레일이자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지난달에도 서울에서 “악의적 왜곡과 거짓 정보가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한미가 함께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20일(현지 시각) 국무부 기자실에 들어섰다. 올 한 해 미국 외교를 돌아보면서 내년도 전망까지 하는 자리. 15분 정도 되는 모두 발언의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많은 언론인이 죽고 다치고 수백 명이 구류되고 협박받은 극도로 위험한(extraordinarily dangerous) 한 해였다. 그럼에도 계속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 갈수록 인간성이 말살되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인 방식으로 거친 질문을 던지는 당신들의 끈질긴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25분 동안 질문 5개를 받았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 충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경쟁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생각을 밝힌 뒤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선 블링컨 장관의 카운터 파트가 될 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출근 첫날 ‘인사 청문회 준비에 집중하고 싶다’며 도어 스테핑 중단(?)을 선언했다. 20일 첫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중 관계도 한미 동맹 못지않게 중요하다” “조화롭게 양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한 지 반나절 만이었다. 외교 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든 말든 그건 후보자 개인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어 스테핑을 언론에 베푸는 시혜처럼 생각하는 언행에서 후보자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었다. 정무도 되고 통상도 된다는 40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질의응답이 두려워 피했을 거라 믿고 싶지는 않다.
외교부에서 내신 기자 간담회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됐다. 세계 정세는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은 외교 수장의 전망과 비전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아무리 외교에 있어서 용산의 장악력이 세졌다고 하지만 언제부턴가 현안에 대해 질의해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거나 피하는 외교관도 너무 많아졌다. G7(7국) 가입이 목전에 있다는 나라의 장관 정도 되는 사람이 출근길 쏟아지는 날것 그대로의 질문에 답할 임기응변과 배짱, 소신이 없다면 그것 자체로 비극적인 일이다. 대통령 순방이 끝나면 성과를 ‘세일즈’하려고 하는 일방향 인터뷰가 아니라 공직자가 갖고 있는 진짜 소신이 듣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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