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언론은 책임 없다고 할 것인가. 마약 투약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주변인과의 관계도까지 그려 설명했다. 음성 반응이 나왔어도 여전히 의심했다.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배려 없이 찍어댔다. 여성과의 사적 관계를 여과없이 전했다. 심지어 혐의 인정이라는 단정까지 했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이선균 보도다. 더 정확히는 이선균 마약 투약 보도다.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27일 현재 모두 오보다. 넉넉히 봐줘도 추측 보도나 과잉보도다.
연예인은 대표적인 공인의 영역에서 산다. 그래서 강요되는 공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 사생활 침해는 받아들여라’, ‘범죄 혐의에 이름만 거론돼도 사과하라’, ‘무혐의 처리돼도 자숙의 시간을 가져라’.... 이선균씨의 60일도 그랬던 것 같다. 유흥업소 여실장 관계 때문에 비난받았다. 많은 분께 실망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일체의 방송 연예 활동에서 물러났다. 여기까지는 연예인의 운명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참담한 죽음은 다르다.
사생활 침해를 강요할 순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한계는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다. 무조건 사과하는 것이 맞는 것일 순 있다. 그 한계 역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다. 침묵하고 자숙하는 게 도리였을 순 있다. 역시 한계는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다. 사생활 침해가, 사과 요구가, 자숙의 강요가 죽음으로까지 몰고갔다면 그때는 범죄다. 죽음이라는 결과로 인해 뒤늦게 성립되는 범죄다. 무책임에 따르는 책임의 시간 아닌가. 정도가 있어야 한다.
경찰 수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경찰이 이씨 수사를 공개한 것은 10월19일이다. 발표 속 이씨는 ‘40대 남성 L씨’였다. 이선균으로 확인되는 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10월23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입건됐다. 그리고 10월28일 경찰에 소환됐다. 공개된 지 열흘, 입건 된 지 6일 만이다. 통상 마약 수사의 핵심은 비밀·신속이다. 충분한 내사를 거친다. 결정적인 순간 체포한다. 그런데 달랐다. 신분 다 알려지고, 입건도 알려진 뒤 불렀다.
가장 중요한 신체 반응 증거도 없었다. 간이 시약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었다. 국과수에서는 모발과 겨드랑이털까지 검사했다. 역시 음성이었다. 이즈음 사건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도 생겼다. 이씨의 마약투약을 증언했던 사람의 구속이다. 유흥업소 여성 실장인 김모씨다. 마약 투약 등 전과 6범이다. 여기서부터 얘기는 ‘한 가장의 사생활’까지 나갔다. 그래도 경찰은 계속 이씨를 불렀다. 세 번째 소환에서는 19시간 동안 밤샘 조사까지 했다.
이씨가 발견된 것은 27일 오전 10시30분이다.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10시12분이었다. 전날 이런 보도가 있었다. ‘이선균, 빨대 이용해 코로 흡입...인정.’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했다. 혹시 이씨가 생전에 접한 마지막 기사였을까. 이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아주 어색한 건 있다. 피의자 진술은 대외 비밀이다. 선임 변호사도 요청해야만 열람할 수 있다. 그게 어떻게 수사팀 외부로 나왔을까. 그리고 왜 이씨를 범인처럼 몰았을까. 어쩌면 이씨의 하소연이 바로 이 지점에 있었을 수 있다.
앞서 지드래곤이 무혐의 처리됐다. 더 없는 치명타를 입었다. 경찰은 당당했다. ‘제보가 확실하면 수사하는 것이다’. 지드래곤은 죽지 않았다. 이선균씨도 수사를 받았다. 소환, 사생활 공개로 너덜너덜해졌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으며 시작된 마약 수사. 그 끝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 타격받고 끝난 지드래곤과 극단적 선택으로 끝난 이선균씨. 이들에게 헌법 27조는 지난 두달간 유죄추정(有罪推定)의 원칙이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