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던 유통 업계 '계묘년' 10대 뉴스 [TF초점]
정부 가격 인상 자제로 '눈칫밥' 본 기업들
실적 저조 여파…희망퇴직 칼바람
WHO, 아스파탐 발암가능물질 분류
[더팩트|이중삼 기자] 2023년 '계묘년(검은 토끼의 해)'은 그야말로 유통 업계에 먹구름이 가득한 한 해였다. 지난해 초 불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3고 현상(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국내 유통 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특히 물가가 크게 요동치자 소비자들은 지갑을 굳게 닫았고, 그 결과 기업들의 실적이 고꾸라지며 희망퇴직 단행이라는 결과까지 이어졌다. 특히 기업 간 진흙탕 다툼이 벌어지는가 하면 발암가능물질 이슈까지 터지면서 조용히 지나가는 달이 없을 정도였다. 바람 잘 날 없던 유통 업계의 올 한 해 이슈를 <더팩트>가 정리했다.
◆ 정부, 강력한 물가관리 속 씁쓸한 유통 업계
올 한 해 유통 업계를 덮친 큰 이슈 중 하나는 '가격 인상 철회'다.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관련 기업들을 찾아 가격 인상 자제 협조를 요청했다. 대표적인 기업은 △농심 △삼양식품 △롯데웰푸드 △빙그레 △CJ프레시웨이 △하림 △동서식품 등이다. 특히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해 빵이나 과자 등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28개 품목 가격을 매일 점검하는 것은 물론, 가공식품의 경우 '물가 관리 전담자'도 새롭게 지정했다. 소비자단체들도 '눈속임 가격 인상' 관련 신고센터 운영에 나서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업계에서는 답답한 심정이라며 사실상 기업을 잡는 꼴이라는 푸념도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 이는 기업들의 가격 인상 계획 철회를 불러왔다. △오뚜기 △풀무원 △롯데웰푸드 △GS25 △CU 등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가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따라 철회를 결정했다. 때문에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은 그대로 둔 채 크기와 중량을 줄여 실질 가격 인상의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 현상도 나타났다. 정부는 이런 현상마저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제조업체가 제품의 용량을 변경할 때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씁쓸함을 표했다.
◆ 실적 부진 여파…'희망퇴직' 칼바람
다음 키워드는 '희망퇴직'이다. 관련 기업들은 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여파로 희망퇴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7.2로 10월(98.1)보다 0.9포인트(p) 하락했다. 7월 103.2 이후 넉 달 연속 하락세다. 특히 9월(99.7)부터는 100 이하로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보다 크면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100 아래면 비관적인 상태로 본다.
매일유업은 저출산 여파로 우유 등 유제품 소비량이 줄면서 경영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8월 만 50세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경영효율화'가 이유였다. SPC파리크라상도 지난달 초 파리바게뜨, 쉐이크쉑 등 14개 브랜드 소속 15년 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특히 롯데쇼핑 경우 주요 계열사인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롯데컬처웍스 등에서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 외에 11번가·GS리테일 등에서도 경영 악화·경영 효율화 측면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아스파탐 발암가능물질 분류
인공감미료 '아스파탐' 이슈도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 7월 국제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아스파탐을 '발암가능물질'(2B군)로 분류했다. IARC는 발암 위험도에 따라 1(확정적 발암 물질), 2A(발암 추정 물질), 2B(발암 가능 물질), 3(분류불가)으로 분류한다. 1군에는 술·담배, 가공육 등이 있고 2A군에는 적색 고기와 고온의 튀김, 2B군에는 김치, 피클 등의 절임채소류가 있다. 발암 가능성이 있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2B군으로 분류한다.
1일섭취허용량(ADI)은 1kg당 40mg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WHO가 설립한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젝파)는 현재 섭취 수준에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 단맛을 내는 인공감미료다.
그러나 제로 슈거 등 유행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아스파탐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부 기업에서는 대체 감미료를 찾는 등 아스파탐의 함유량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 쿠팡·CJ제일제당, 기싸움에서 진흙탕 다툼
납품단가를 둘러싼 쿠팡과 CJ제일제당의 진흙탕 다툼도 10대 뉴스로 선정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쿠팡과 CJ제일제당은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일부 간편식 납품단가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첨예한 입장 차로 갈등을 빚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무리한 마진율을 요구했는데 맞추기 힘들다고 말하자 발주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CJ제일제당이 수차례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한편 발주 약속 물량을 공급하지 않는 갑질을 해왔다고 목소리를 냈다.
기싸움은 점차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CJ제일제당은 신세계그룹과 손을 잡고 공동으로 상품 개발에 나선다고 밝히며 동맹 구축에 나섰다. 쿠팡은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대기업이 빠지니 중견·중소기업 매출이 올랐다며 대기업의 독과점 문제를 맹비난했다. 업계에서는 통상 발생하는 일이라는 의견이지만,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주도권 싸움은 이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오줌 맥주' 논란 칭다오 맥주 내리막길
'칭다오 맥주'도 올 한 해 화두였다. 지난 10월 19일 중국 웨이보를 통해 산둥성 핑두시 소재 칭다오 제3공장에서 한 직원이 맥주 원료에 방뇨를 하는 듯한 영상이 공개됐다. 이 여파로 한국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실제 국내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칭다오 맥주 매출은 많게는 40%, 적게는 20% 줄었다. 중국 맥주 수입량도 급감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10월 중국 맥주 수입량은 2281톤(t)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2.6% 급감했다. 수입액은 192만7000달러로 37.7% 줄었다.
칭다오 맥주 국내 수입사인 비어케이는 중국 내수용으로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를 확인했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 때문에 비어케이는 지난달 희망퇴직 신청에 나서기도 했다.
◆ 쿠팡에 유통 1위 왕좌 내준 이마트
절대 강자였던 이마트가 쿠팡에 왕좌를 내준 일도 올해 뜨거운 이슈였다. 쿠팡은 올해 1분기부터 이마트 실적을 추월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이마트 매출은 7조1354억 원, 2분기는 7조2711억 원, 3분기는 7조7096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쿠팡은 올해 1분기 7조3990억 원, 2분기는 7조6749억 원, 3분기는 8조1028억 원으로 양사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아직 4분기 실적까지 봐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쿠팡이 올해를 기점으로 독주 체제를 완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 먹태깡·노가리칩 출시 직후부터 '품귀현상' 돌풍
봉지과자에 파란을 일으킨 '먹태깡'과 '노가리칩'도 올 한 해를 빛냈다. 농심이 지난 6월 26일 야심차게 내놓은 '먹태깡'과 롯데웰푸드가 지난 9월 4일 출시한 '노가리칩'은 봉지과자의 한 획을 그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 내 오픈런도 불사했고,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들 상품은 현재까지도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여전히 구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먹태깡' 경우 출시 이후부터 올해 12월 20일까지 1170만 봉이 팔렸다. 노가리칩은 올해 12월 기준 700만 봉 이상이 판매됐다.
◆ 한화 삼남 김동선…신사업·본업 간 온도 차이
'미국 3대 버거'(파이브가이즈·쉐이크쉑·인앤아웃버거) 가운데 하나로 통하는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들여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도 굵직한 이슈거리였다. 다만 본업인 백화점 사업은 고꾸라지면서 경영능력에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
파이브가이즈 1·2호점 모두 실적이 순항 중이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서초구 소재 강남점 오픈에 이어 지난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소재 더현대 서울에 2호점까지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올해 9월 30일 기준 한화갤러리아 자회사 에프지코리아·비노갤러리아 매출은 35억9221만 원이다. 반면 본업인 백화점 사업 경우 위기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올해 3분기 한화갤러리아 매출은 1200억 원, 영업이익은 2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5%, 영업이익은 74% 급감했다. 일각에서는 한화갤러리아가 본업에 관심이 낮아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 홈쇼핑 업계·유료 방송 사업자 간 송출수수료 갈등
홈쇼핑 업계에서도 큰 이슈가 있었다. 올해 홈쇼핑 업계는 유료방송 사업자 간 송출수수료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CJ온스타일 등 주요 홈쇼핑 채널에서 '방송 송출 중단'(블랙아웃)이라는 초강수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정부는 이를 중재하기 위해 홈쇼핑 송출수수료 대가검증 협의체 운영지침을 마련했다. 현재는 각 사 협상 등으로 송출 중단이 잠정 보류된 상태다.
실제 송출수수료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의하면 매출 대비 송출수수료 부담은 2018년 46.1%에서 지난해 65.7%까지 불어났다.
◆ 인천공항서 방 뺀 '터줏대감' 롯데면세점
올해 면세점업계 최대 이슈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건이었다. 주목된 기업은 롯데면세점이었다. 22년 간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 사업자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다. 10년 간 운영권이 달렸던 입찰에서 한 구역도 따내지 못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현대백화점면세점으로 채워지게 됐다. 롯데면세점은 시내면세점과 해외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인천공항 면세점의 매출 비중은 9% 수준으로 90% 이상 시내면세점에서 발생했다. 롯데면세점이 방을 빼게 되면서 신라면세점이 1위를 탈환한 가능성이 높아졌다.
j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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