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혼동은 없다’ 위스키 분류법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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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주류에 관심이 늘면서 연말 모임에 위스키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BYOB(Bring your own bottle: 주류 각자 지참)부터 각종 시음 행사, 개인이 주최하는 소모임까지. 평소 좀 희귀하거나 인기가 많은 위스키가 등장하면 해당 시음회의 매진 속도는 초 단위로 마감됩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위스키와 하이볼이 자연스럽게 제공되고 그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삼겹살에 하이볼이라는 말도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어쩌면 위스키도 와인처럼 자연스럽게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막 관심을 두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번 화에서는 입문하는 분들이 가장 헷갈리는 부분 중 하나인 싱글몰트와 블렌디드 위스키의 차이점과 분류법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스카치위스키의 정의
위스키의 정의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엄격한 규제를 통해 고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스카치위스키의 규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쪽 생태계만 이해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터득됩니다. 스카치위스키란, 스코틀랜드에서 당화·발효·증류시켜 최소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뒤, 알코올 도수 40% 이상으로 병입된 위스키를 말합니다. 타국에서 똑같이 만들었다고 스카치위스키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스카치위스키에 대한 법적 정의는 1990년 6월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됐고 2009년 11월 스카치위스키의 분류법이 추가로 제정되었습니다.
◇싱글몰트와 싱글 그레인 위스키
스카치위스키는 원료에 따라 몰트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로 나뉩니다. 위스키 제조에 쓰이는 원료가 100% 보리면 몰트위스키, 호밀이나 옥수수 등의 곡물을 사용하면 그레인 위스키로 분류합니다. 특히 단일 증류소에서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생산된 제품을 싱글몰트 위스키, 그 외 곡물을 사용해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한 위스키를 싱글 그레인 위스키라 부릅니다. 여기서 싱글은 위스키 원액이 단 하나의 증류소에서 생산되었다는 의미에서의 싱글을 의미합니다. 즉, 여러 오크통에서 다양한 햇수로 숙성된 몰트위스키를 섞어도 이를 싱글몰트라고 합니다. 몰트란, 싹을 틔운 보리를 말하는데 식혜 만들 때 쓰는 엿기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얼핏 보면 재료만 다른 술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둘은 증류 방식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증류 방식은 크게 단식 증류(전통식)와 연속식 증류(현대식)로 나뉘는데 이 차이가 위스키의 풍미와 결괏값 달라지게 합니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단식 증류 방식으로 대량생산이 어렵고 증류 과정에서 맛과 향 등 원재료의 손실이 적어 생산 단가가 비쌉니다. 단식 증류란, 증류기에 발효가 완료된 액체를 넣고 열을 가하여 숙성에 쓰일 증류주를 얻는 방법입니다.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2~3회 증류를 거쳐 증류액을 뽑아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맥켈란, 발베니, 글렌피딕 등이 이에 해당하며, 개성이 뚜렷한 맛을 보여줍니다. 반면 그레인 위스키는 연속식 증류를 통해 대량생산과 경제성에 초점을 둡니다. 이는 단식 증류기 여러 개를 압축시킨 증류탑 형태로, 반복적인 증류를 통해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대량으로 생산하는데 용이합니다. 게다가 보리에 비해 저렴한 곡물을 사용해 생산 단가도 경제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반복적인 증류 과정에서 원료가 가진 고유의 맛이 점점 옅어져, 위스키의 풍미가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중에는 그레인 위스키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제품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걸 어디다 쓰느냐.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입니다.
◇블렌디드 위스키
블렌디드 위스키란, 싱글몰트와 값싼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합리적인 가격의 ‘무난한 위스키’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적게는 2곳, 많게는 50곳이 넘는 증류소의 위스키를 혼합해 평균적인 맛을 낸 결과물입니다. 이를 조합하는 마스터 블렌더라는 전문 직업군도 여기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성격이 전혀 다른 위스키를 조화롭게 연결해 새로운 창조물을 빚어내는 연금술사 같은 역할을 합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싱글몰트에 비해 개성은 약하지만, 목 넘김이 좋고 부드러워서 마시기가 편합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조니워커, 발렌타인, 로열 살루트, 시바스 리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원래는 19세기 중반 품질이 고르지 못했던 싱글몰트를 섞어 균일화된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와 블렌디드 그레인 위스키
여러 증류소의 싱글몰트만을 섞었을 때 블렌디드 몰트위스키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는 그레인 위스키가 포함되지만, 블렌디드 몰트위스키는 단일 증류소에서 생산된 싱글몰트 제품들로만 이루어진 위스키입니다. 대표적으로 조니워커 그린, 몽키숄더 등이 있습니다. 블렌디드 몰트위스키는 블렌디드에 비해 맛이 덜 뭉개지고 각 싱글몰트가 가진 원액의 특징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가격도 비슷한 조건의 블렌디드 위스키에 비해 더 비쌉니다.
두 가지 이상의 그레인 위스키를 섞으면 블렌디드 그레인 위스키가 만들어집니다. 원칙적으로 스카치위스키의 분류법에 따라 나뉘기는 하지만,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가끔 독립 병입 회사 등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그 또한 매우 희귀합니다. 물론 맛도 크게 기대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위스키의 90% 이상은 싱글몰트, 혹은 블렌디드 위스키에 해당합니다. 이 두 가지만 이해해도 스카치위스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 셈이죠. 이 모든 과정에 훨씬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지만, 일단은 이 정도만 알아도 위스키를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올해는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싱글몰트 시장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가성비보다는 희소성과 가치에 집중하는 소비가 늘어난 탓에 입문용 엔트리급 위스키의 수급도 어느 정도 원활해진 모습입니다. 여전히 유행에 맹목적으로 탑승해 위스키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맛도 모르고 상자째 업어가는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위스키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 현재 스코틀랜드에는 약 150개의 위스키 증류소가 가동 중입니다. 이중에서만 골라도 경험할 수 있는 위스키가 셀 수없이 많습니다. 싱글몰트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블렌디드라고 무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둘 다 특징이 명확한 술인 만큼 상황과 기분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예상치 못한 순간 인생 위스키를 만나는 선물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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