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오던 배우 이선균(48)씨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있던 차 안에서 번개탄 흔적이 나온 점 등으로 미뤄 경찰은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종로구의 와룡공원 인근 주차장에 세운 승용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차량 조수석에서는 불에 탄 번개탄 1점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발견되기 18분 전인 10시 12분쯤 서울 강남경찰서에는 “(이선균씨가) 유서 같은 메모를 쓰고 집을 나섰다. 차가 없어졌다”는 이씨 매니저의 112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 접수 직후 경찰은 차량 번호와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을 통해 이씨를 찾아나섰고, 와룡공원 인근 주차장에서 그의 회색 승용차를 발견했다. 이씨는 유서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시신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이씨 소속사는 이날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억울하지 않도록 억측이나 추측에 의한 허위 사실 유포를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례는 유가족 및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치러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씨와 관련된 마약 의혹 수사는 3개월 넘게 진행됐다.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가 지난 9월 중순 강남의 한 회원제 유흥업소에서 마약이 나돈다는 첩보를 받으면서 수사는 시작됐다. 내사 단계였지만 이씨 등 유명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이씨가 유흥업소 실장 김모(여·29)씨 등에게 마약 투약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받아 3억5000만원을 뜯겼다며 고소장을 낸 직후여서 더욱 그랬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내사(內査)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 10월 19일 “영화배우인 40대 남성 L씨 등 8명에 대해 마약류관리법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 전 조사(내사) 중”이라고 밝힌 것이다. 내사는 말 그대로 의혹만 불거진 정도여서 수사를 할지, 말지 결정이 안 된 상태를 말한다. 당시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 내부적으로 경쟁이 붙어 사건을 선점하기 위해 외부로 흘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이런 사실을 공개하자 이씨 소속사는 “L씨가 이선균씨가 맞는다”고 수사 대상이 된 사실을 인정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모든 활동이 중단됐고, 사실상 피의자가 됐다. 같은 달 23일 경찰은 이씨를 형사 입건하고, 닷새 뒤(28일) 첫 조사를 벌였다. 유명인인 만큼 공개 소환이었다. 포토라인에 선 그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많은 분께 큰 실망감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 순간 너무 힘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이 검사와 정밀 검사에서 연이어 마약 ‘음성’ 판정이 나왔다. 적어도 8~10개월 동안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 해석됐다. 이씨는 줄곧 “김씨가 나를 속이고 약을 줬다” “마약인 줄 몰랐다”고 하는 등 혐의를 부인했다.
그런데도 혐의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2차례 더 공개 소환됐고, 마지막 23일에는 19시간을 조사받았다. 이날 조사에서 김씨가 “(이선균씨가) 빨대를 이용해 케타민을 코로 흡입하는 걸 봤다”고 진술한 데 대해, 이씨는 코로 흡입한 것은 맞지만 “수면제인 줄 알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숨지기 전날 변호인을 통해 “이선균씨와 공갈범 중 누구 말이 맞는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해달라”는 의견서도 냈다.
인천의 한 변호사는 “간이·정밀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는데도, 공개 소환을 세 번씩이나 하며 수사를 이어가는 건 이례적”이라며 “주목도가 높은 연예인 사건이라 경찰이 다소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저런 정도의 구체적 진술이나 증거가 나왔으면 피의자 보호를 위해서도 빨리 신병 처리를 했어야 한다”며 “지드래곤 무혐의 등에 부담을 느껴 이씨 사건은 더 질질 끌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경찰청 한 간부는 이씨 수사가 무리한 것 아니냐는 기자들 지적에 “이런 수사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불에 안치기도 전에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 측 한 관계자는 “조사를 받을 때마다 관련 내용이 언론에 나오고, 수사기관에 있어야 할 김씨의 통화 내용 등이 공개되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수사를 담당한 인천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 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집행한 모발 채취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인 동의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