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이 "신은 있는가" 질문했던 가톨릭 지성 정의채 몬시뇰 선종

이향휘 선임기자(scent200@mk.co.kr) 2023. 12. 2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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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최고 원로 석학 정의채(세례명 바오로) 몬시뇰(Monsignor·명예 고위 성직자)이 27일 오후 5시 15분 노환으로 선종했다고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밝혔다.

정 몬시뇰은 199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특명으로 제8차 세계주교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양성'에 대해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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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8세 … 중세철학의 대가
서강대 교수·가톨릭대 총장 역임
정권 가리지 않고 쓴소리 하기도

가톨릭 최고 원로 석학 정의채(세례명 바오로) 몬시뇰(Monsignor·명예 고위 성직자)이 27일 오후 5시 15분 노환으로 선종했다고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밝혔다. 향년 98세.

고인은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실에 대한 따끔한 발언으로 한국 가톨릭계의 어른 역할을 해왔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작고 전 그에게 "신은 있는가" "삶은 왜 고달픈가" 등 24가지 질문을 준비했다가 끝내 답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는 수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성직자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깊은 질문이었다"며 "충분히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병세가 악화돼 만남이 불발됐다"며 아쉬워했다.

정 몬시뇰은 1925년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으로 6·25 전쟁 때 월남해 1953년 사제수품을 받았다. 부산 초량본당과 서대신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한 뒤 로마 우르바노대학 대학원에서 유학,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세 철학의 대가다. 당시 최우수 논문상을 받으며 '공부를 계속하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피폐한 고국에 돌아가 일해야 한다"며 귀국했다.

이후 1961년부터 1984년까지 가톨릭대 신학부(현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수로 지내며 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고, 불광동본당·명동본당 주임신부를 지낸 후 다시 학교로 복귀해 학장(당시 총장)을 맡으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서강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정 몬시뇰은 199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특명으로 제8차 세계주교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양성'에 대해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199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2005년 교황청으로부터 교회에 공이 큰 원로 사제에게 수여되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고인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역대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1000년은 아시아의 시대"라며 "한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생전 "중국의 사회주의를 변화시킬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중국과 미국의 중재 역할을 한국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서와 역서로는 '형이상학' '존재의 근거 문제' '삶을 생각하며' '중세 철학사' 등 40여 권이 있다. 1985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작 '신학대전' 번역을 시작해 2000년 16권까지 라틴어·한국어 대역본으로 번역했다

빈소는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마련되며, 조문은 28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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