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공갈빵’ 같은 정부의 간병비 대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민의 간병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릴 수 있도록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라”고 지시하자, 정부는 곧바로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간병 지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정부가 “간병비 걱정 없는 나라, 국가가 중심이 되어 책임집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니 정말 간병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것은 겉보기만 그럴싸하고 정작 알맹이는 없는 ‘공갈빵’ 같은 대책이다. 첫째, 요양병원 간병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대책은 이 정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시범사업만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부 임기가 절반쯤 지난 2024년 7월에 시범사업을 시작해서 이 정부 임기를 마치기 직전인 2027년 1월에서야 본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내내 시범사업만 하겠다는 것이고, 돈은 안 쓰면서 생색만 내겠다는 것이다. 내년 요양병원 간병비 시범사업 예산은 85억원에 불과하다.
남은 임기 내내 시범사업을 해야 할 정도로 준비할 것이 많을까? 그렇지 않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간병을 누가 담담하고, 간병 인력 1명이 몇명의 환자를 담당하도록 할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간병을 담당할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같은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다. 자격증은 있지만 일하지 않고 있는 유휴인력이 많기 때문이다. 유휴인력은 간호조무사가 40만명, 요양보호사가 150만명에 달한다. 한 사람이 담당하는 노인 환자 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여주고 근무조건을 개선하면 유휴 인력을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간병비로 돈을 얼마나 쓸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결정하면 되는 문제이지 시범사업을 한다고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 방안대로 장기요양보험 1~2등급이면서 의학적으로 중증인 노인에게만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면 연간 1조5000억원이 들고, 장기요양 1~2등급 노인 환자 모두에게 간병비를 지원하면 연간 2조4000억원이 든다. 몇년 안에 장기요양보험 3등급 노인까지 간병비를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시범사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둘째, 병원이 간병을 책임지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대상자를 400만명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시작한 지 9년이 지났지만, 전체 입원 환자 중에 간병을 받는 환자는 대략 30%도 되지 않는다. 2022년 말 기준으로 병원급 이상 병상 약 24만개 중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제공되는 병상은 약 7만개에 불과하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간병이 필요한 환자보다 병원 경영에 더 신경을 쓰면서 제도를 운영해 온 탓이다. 중소병원이 대형병원에 환자를 뺏긴다고 불평하니 정작 간병이 필요한 중증환자가 많은 대학병원에서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못하게 하고, 지방병원 환자가 줄어들까봐 수도권 병원에선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동 수를 1~2개로 제한해왔다.
이 와중에 병원들이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병동을 편법적으로 운영하면서 정작 간병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은 간병을 못 받고 경증 환자가 간병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들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인력 기준이 낮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연봉 3000만원 수준의 신규 간호사를 간호간병 병동에 투입하고 연봉 3500만~4000만원을 기준으로 책정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입원료를 받아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병원들의 편법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가 시작된 2015년부터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제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번에 발표한 대책에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보이지 않는다.
셋째, 노인들은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데 재가서비스는 늘리지 않으면서 요양병원 간병비 부담만 덜어주는 정책은 노인들이 원하는 정책이 아니다.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노인 10명 중 7명은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 10명 중 1명만 요양병원에서 계속 지내고 싶어 한다. 장기요양보험의 재가급여를 요양병원 진료비 수준으로 높여주면 많은 노인들이 요양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재가서비스를 늘리지 않고 간병비 부담만 줄이는 것은 ‘부작용이 심한 치료약’을 처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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