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바람 냄새
네 발 내 발 아니고 제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잘못과 실수가 많은 인생이야. 누구나 그렇지. 그래 ‘제발 부탁해’란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제발 더 자고 싶어. 기린은 하루 3시간밖에 못 잔다고 해. 개미는 아예 잠을 안 자다시피 한다는데, 하루에 두 번 고작 7~8분씩 쪽잠을 잔대. 수면제라도 먹지 좀. 나무늘보는 너무 게을러터져서 일주일에 딱 한 번 나무 밑으로 내려오는데,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래. 내년엔 제발 부지런해지길 바라. 매미는 땅속에서 15년 이상을 지낸다. 제발 내년에는 땅속에서 나와 로커처럼 시끄럽게 노래하렴. 하마는 오줌을 누어 지린내로 구애를 하는데 내년에는 제발 잘생긴 미모로 짝을 찾길. 타조는 1년 중 딱 절반 6개월 이상을 혼자 생활한대. 제발 내년엔 외롭지 않길.
누굴 만나자고 할 때 과거엔 그냥 쉽게 만나자 했지만, 지금은 제발이란 말을 앞세워도 될까 말까. 다들 왜 그리 바쁘고 분주한지. 더러는 코로나 이후로 가족 말고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 ‘제발 내버려둬’ 하면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니 그냥 알아서들 사는 거지.
나는 그래도 쿰쿰한 방안퉁수, 시멘트 방구석 냄새보다는 바람 냄새 나는 사람이 좋더라. 제주에 사는 의사 동생이 있는데, 한동안 못 보고 살았다만 내가 건너가면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아설랑 회를 떴어. 그가 에세이 책을 냈는데, 전영웅의 <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세상도 변했는데 그냥 가족들한테 알아서 하라고 하고 여행이나 휙 떠나세요!” 여성 환자들이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면 던지는 말이라는데, 정신과 의사도 아니면서 막 던지네 시원한 말을~. 당신의 몸이나 영혼이 갇히거나 붙잡혀 있지 않고, 제발 바람 냄새가 나길 빌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입에서 똥구멍까지 다 비워져서 오로지 바람 냄새만 후후~. 돈 냄새, 돈독 오른 사람이라도 들고 갈 수 없는 명품백. 죽고 난 뒤 누가 가방을 들고 일어서던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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