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Don’t look back in anger
제가 수의사로서 몸담고 있는 ‘우리동물병원 생명사회적 협동조합’에선 고양이와 강아지가 등장하는 탁상 달력을 매년 발행합니다. 수려한 얼굴에 근사한 하얀 털, 호랑이 같은 허리 라인을 자랑하는 우리 나비도 올해엔 모델로 선정돼 4월 한 달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쳐다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생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우리 강아지를 달력에서도 보게 될 생각에 벌써부터 4월이 기다려집니다. 큰 노력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기도 하고, 잘생긴 나비에게 고맙기도 합니다.
십수년 전, 교육방송이 심야에 방영하던 다큐멘터리에서, 그룹 ‘오아시스’의 멤버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 공업지역의 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죽기 일보직전까지 얻어맞는 것이 일상이었고, 기절했다가 또다시 폭력으로 눈뜨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한, 심한 말더듬이 증상으로 오랜 기간 언어장애 치료를 받아야 했고, 어머니는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세 명의 아들과 함께 집을 나와야 했습니다.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꿈도 희망도 없던 아이가 어떻게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노엘 갤러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생은 언제나 재미있어진다. 나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기대하며 눈을 떴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의 그 대답은 좌우명처럼 지금껏 제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막상 마음먹고 해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잠들기 전, 내일이 기대되고 설렌 적이 몇번이나 있나요?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부끄러운 아재개그부터 다이어트에 실패한 저녁밥상까지, 자질구레한 후회들이 생각을 가득 잡아먹기 일쑤입니다. 아침에 눈뜨며, 오늘을 기대하고 설레기는 어디 쉬운 일인가요?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 커피로 깨워보아도 소용없고, 출근만 했을 뿐인데, 왜 그리 힘이 드는지.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하루 할 일이 걱정으로 바뀌었다가, 퇴근 후엔 또 후회가 시작됩니다.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의 단위가 하루가 아닌 한 해가 되면 더욱 참담합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 뱉지 말았어야 할 말들,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일들이 한가득입니다. 하루나 한 해를 돌이켜보며 반성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듣기 좋은 말은 그 편이 더 쉽기 때문에 나온 말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노엘 갤러거는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의 열혈팬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크리스마스와 박싱데이에 즈음하여, 맨시티가 승리하면, 그들의 홈 구장인 에티하드 스타디움엔 어김없이 오아시스의 명곡 ‘Don’t look back in anger’가 울려 퍼지고,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매 연말 비슷한 장면을 볼 때면 그날 하루, 아침부터 그 승리를 기대하고 들떠 있었을 노엘 갤러거의 마음이 상상되어 부러울 따름입니다. 날씨는 차가워지고, 자칫 마음을 놓으면 후회가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계절입니다. 후회나 반성으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일은 절대 없도록! 맨시티 팬들의 떼창이라도 함께 목 놓아 부르며 돈! 룩! 백! 저는 설렘만 가득 안고 2024년 한 해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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