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하청과 방납

기자 2023. 12. 2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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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브 방송에서 여러 해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용균씨와 ‘구의역 김군’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구의역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지하철 2호선 역이다. 구의역 김군 사망 사건이 2016년 5월28일에 일어났고, 김용균씨 사망 사건이 2018년 12월11일에 일어났으니 벌써 7년과 5년 전 일이다. 내 일상 밖 일이기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유튜브로 환기된 기억에 무심하기는 어려웠다.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불과 19세, 24세 나이에 하청업체 노동자로 위험한 일을 혼자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고라니. 더구나 그것이 완전히 합법적으로 진행된 일이었다는 것이, 내가 속한 공동체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런데 그 유튜브 방송 진행자는 정작 두 사람의 죽음이 아닌, 사망 당시 그들이 받았던 임금에 주목했다. 김용균씨의 월급은 226만원이었고, 김군의 월급은 130만원이었다. 반면 원청업체가 이들의 월급으로 하청업체에 지급한 액수는 김용균씨의 경우 522만원, 김군은 240만원이었다. 두 사람이 받은 월급과 이들 몫으로 하청업체에 지급된 금액의 차이는 너무 컸다. 차액은 하청업체의 ‘관리비용’이었을 것이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하면 그것은 ‘관리비용’이라기보다는 ‘중간 착취’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해 보인다.

그 유튜브 방송 진행자가 말한 대로 이런 불합리는 정부가 간단히 고칠 수 있다. 그런데 2021년 10월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이 발의되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이런 불합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유럽에서는 이런 하청관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고, 미국에서는 이런 관계가 존재하기는 해도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법으로 보호한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흔히 대동법 실시 이전에는 현물로 냈던 공물을 법 시행 이후 쌀로 내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료에는 대동법 이전에도 대다수 공물은 현물이 아닌 쌀로 냈다. 예를 들어 전라도 영광 고을에서 굴비를 공물로 바쳐야 했다면 현물인 굴비 대신에 그 굴비값에 해당하는 쌀을 냈다. 대동법의 핵심은 공물 납부 형태를 현물이 아닌 쌀로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법으로 공물을 현물로 내게 하는 것과 쌀로 내게 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법적으로 공물을 현물로 납부하게 하면, 공물을 받는 관청에 현물에 대한 품질 검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물건도 퇴짜를 놓을 수 있다. ‘방납(防納)’이 그것이다. 공물 수용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결국 통상 공물값의 여러 배 되는 값을 받고서야 공물 납부를 인정해주었다. 관청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탈세’가 되었다. 힘없는 백성들이 탈세를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법 규정으로 납부 형태를 쌀로 하면, 받는 측에 공물 품질 검사 권한이 없어진다. 쌀은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공물가는 높아질 수 없었다.

하청업체가 부당한 이익을 혼자 차지할 수 없듯이, 방납을 했던 관청이 그 이익을 혼자 누릴 수는 없었다. 일부는 관청 운영을 위한 ‘관리비용’이라는 ‘공적’ 목적에 쓰였다. 이것이 오래도록 방납을 존속시킨 현실 논리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많은 몫은 권력자들에게 돌아갔다. 큰 규모의 오래 지속된 부패는 늘 구조적이다.

며칠 뒤면 새해이다. 새해에는 우리 주변에 넓게 존재하지만 밝게 조명되지도, 자주 언급되지도 않는 것들에 상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삶 자체를 구성하는 내용이고, 우리 일상을 떠받치는 것들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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