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주적이 누군데?”…국방부, 정신전력 교재 개편해 ‘시끌’

김지호 2023. 12. 27. 2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主敵)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이 말을 왜 못 해.”

구독자 272만명인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Psick Univ(이하 피식대학)’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한 말이다. 지난 3일 영상에서 피식대학 출연자 3명이 게스트 1명과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중 한 남성 출연자는 대적관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의 주적은 누구냐. 북한이다 북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씨 일가, 3대 세습을 일삼는 북한의 김씨 왕족이 잘못이다. 대한민국에서 이 말을 왜 못해”라고 외쳤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Univ’ 캡처
논란이 된 영상은 27일 기준 260여만회를 기록 중이다. 이를 본 누리꾼 반응은 엇갈렸다. 응원하는 댓글이 주를 이뤘지만, 정치적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 “올바른 안보관을 당당히 얘기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 “올바른 안보관을 가지고 분명하게 주장할 용기까지 있다니 놀랍다” 등이다. 반면 불편하다는 반응은 “대형채널이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대놓고 하는 것이 맞나?”, “왜 스스로 구설에 오르려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등이었다.

논란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영상 게시 3주 후 국방부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새롭게 개편·발간하면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기존 ‘안보관’이 ‘대적관’으로 바뀌면서 북한의 위협이 강조돼 ‘주적’ 논란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군 입장이 정부 성향에 따라 바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7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달 말 전군에 배포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국가관, 대적관, 군인정신 등 3개 분야로 구분돼 있다.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5년마다 개편된다. 5년 전 문재인 정부 때 발간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 등 3개 분야였다. 하지만 새 기본교재에선 ‘안보관’이 ‘대적관’으로 변경돼 북한의 위협이 강조됐다.

지난 정부 교재에서 북한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교류와 협력 대상임과 동시에 여전히 현실적인 군사적 위협”으로 기술됐다. 특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내부 세력으로 규정했던 ‘종북’ 관련 내용도 없앴다. 박근혜 정부 당시 2013년 발간된 교재에선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길’ 주제로 종북세력을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을 조성하며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내부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종북세력이라는 개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점을 고려해 군 장병들에게 교육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아 2019년 교재에서 사라졌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교재에선 해당 표현이 부활함과 동시에 대적관이 강화됐다. 새 교재는 “우리 국군에게 있어 대한민국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명백한 우리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 교재에 없는 ‘내부 위협세력’의 위험성도 새 교재는 상세히 기술했다. 교재는 내부 위협세력에 대해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는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내부의 북한 추종세력을 선동하고 지원해왔다”며 “특히 한반도 공산화의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고자 남한 내부에 지하당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고 기술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새 교재가 공개된 26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정권이 바뀌면 교재 내용이 또 바뀌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교재 내용은) 사실과 역사적·객관적 내용들을 기술한 것이다”며 “정치적으로 또는 진영 논리에서 해석하는 것 자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전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기본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며 “안보상황과 대북관계가 계속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5년마다 발간되는 교재가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필요한 내용이 선별되는 것이고, 결국 정신적 대비태세로 이어지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 교재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4·19혁명으로 축출된 이승만 독재 정권을 ‘권위주의 정권’이 아닌 ‘일부 과오’로 포장했다”며 “역사 왜곡에 특출 난 ‘바이든-날리면 정권’다운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강 대변인은 “국방부의 기본교재에는 우리의 적으로 북한과 함께 ‘내부 위협 세력’을 지목하는 내용까지 담겼다고 한다”며 “국가안보를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이견을 단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윤석열식 매카시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비판을 이어갔다. 홍 원내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치 중립성을 훼손하고, 총선을 앞두고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시도한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홍 원내대표는 “국방부는 엉터리 교재 발간을 즉각 중단하라. 민주당은 해당 교재의 사용 금지 가처분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홍 원내대표는 정치적 중립도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이래 모든 정부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며 “2019년 민주당 정부가 발간한 교재에는 특정 대통령에 대한 찬양 서술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 한 장도 없었지만 지금 교재에는 특정 인물에 대한 노골적 찬양과 미화,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과 연설문으로 도배됐다”고 지적했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