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이란, 고농축 우라늄 다시 증산”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12. 2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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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에서 최근 핵무기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의 대폭 증산 등 비정상적인 핵 활동 징후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며 발발한 전쟁이 석 달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서방이 하마스의 배후로 의심해온 이란이 본격 핵무장에 나설 경우 중동 정세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걸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6일(현지 시각) 최신 보고서에서 “고농축 우라늄 생산량을 줄이던 이란이 지난달부터 최대 순도 60%(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U235 함량 기준)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며 “최근 한 달간 약 9㎏의 고농축 우라늄이 다시 추가 생산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순도 60%의 우라늄은 핵무기 제조 전 단계에 해당한다. 이를 한 번 더 농축해 순도 85%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우라늄 기반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이론상 5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이 얻어지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

이란의 이 같은 동향은 불과 두 달 남짓 사이에 급변했다. 앞서 IAEA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이란이 월 9㎏에 이르던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8월에는 3㎏대로 줄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복원 등 미국과 이란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청신호로 파악됐다.

이란 핵 문제는 2002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정부 단체의 폭로로 중부 나탄즈 지역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 인근 아라크 지역에 중수 생산 공장의 존재가 드러났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보수파 정부가 핵개발 추진을 강행하면서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으며 급속히 고립됐다. 이후 들어선 중도파 정부가 2015년 서방 6국과 핵 합의를 체결하면서 이란 핵 위기는 해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핵 합의를 전격 탈퇴하고, 이에 반발한 이란이 노골적으로 합의 사항을 어기면서 핵 합의는 무력화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핵 합의 복원을 목표로 이란 측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두 나라가 지난 9월 18일 수감자를 맞교환하고, 한국의 은행에 묶여 있던 8조원 규모의 이란 원유 수출 대금을 해제하는 가시적 성과도 냈다. 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이란이 핵무장에 시동을 걸었다는 징후가 포착되면서 중동 정세는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면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즉각 이란 자금을 재동결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란이 다시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은 현재 포르도 지하 핵시설, 나탄즈 핵시설 등에서 다양한 순도의 농축 우라늄을 생산 중이다. 보통 순도가 5~20%를 넘어가면 농축 우라늄이라고 본다. 지난달 기준 이란의 농축 우라늄 보유량은 4487㎏에 이른다. 이 중 순도 60% 이상 고농축 우라늄의 양은 128.3㎏에 달한다. 202.8㎏의 저농축(3.67%) 우라늄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2015년 핵 합의는 일찌감치 휴지 조각이 돼버린 상황이다.

이란은 이렇게 생산해낸 핵연료가 원자력 발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서방국가들은 핵무기 제조에 전용하려는 의도로 의심하고 있다. IAEA와 미국, 이스라엘은 이란이 투르쿠자바드, 마리반, 바라민 등에 미신고 핵시설을 추가로 운영하면서 실제론 더 많은 농축 우라늄을 생산·보유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란의 농축 우라늄 증산은 이미 악화 일로에 있는 이란과 서방 국가 간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란은 지난해 9월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시위의 배후에는 현 이슬람 신정(神政) 체제에 균열을 내려는 서방 국가들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에 자국산 ‘샤헤드’ 공격 드론을 대거 수출하고, 드론 제조 기술마저 지원하면서 미국과 유럽 국가의 분노를 샀다.

이란이 지원하는 반(反)이스라엘 무장 단체들이 이스라엘과 미군을 잇따라 공격하면서 확전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다. 친이란 무장 단체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25일 이라크 북부의 아르빌 미군 기지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이로 인해 미군 3명이 부상하자 미국은 즉각 이 단체의 거점 3곳을 보복 공습했다. 미국은 예멘 반군 후티의 홍해 인근 상선 공격도 이란이 지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현재 이 지역에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이끄는 2개의 항모 전단을 파견한 상태다. 이스라엘은 이날 자국 북부 접경 지대를 지속적으로 공격해 온 시리아의 친이란 무장 세력을 타격, 이곳에서 활동 중이던 사이드 무사비 이란혁명수비대 준장을 사살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에 “이스라엘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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