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시간 점유하는 다이소, 국민가게에 대한 국민의 바람
점심 식사 뒤 산책 겸 들른 다이소 매장. 히잡 쓴 외국인, 탕후루 꼬치를 한 손에 든 초등학생, 정장 차림의 남자, 등산복을 갖춘 중년 여성까지 복작인다. 이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이렇게 차곡차곡 진열된 상품들의 행간(行間)에서 이 도시의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다이소하다’가 국민 기분이 됐다는 글(제1442호 ‘오늘은 왠지 다이소하다’ 참조)을 쓴 지 1년째. 그사이 다이소는 더 많은 것을 갖췄다. 다이소 운영사인 아성다이소는 일본 지분을 전량 매수해 국적 논란을 완전히 해결했고, 익일 배송 서비스를 도입했으며, 2024년 매출 전망치는 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 아무래도 불황이지. 그렇지만 가격 접근성만 따지기에는 한때 ‘사장님이 미쳤어요!’라며 폐업 세일을 내세웠던 가게들은 반짝 유행하고 사라졌다. 지금 다이소의 존재 이유는 경제를 넘어선다. 예전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새 학기 등을 앞두고 흔히 주고받았던 것이 문화상품권이라면, 요즘에는 다이소 상품권이 선호된다고 한다. 다이소가 문화까지 대체 중이다.
‘똥템’을 찾는 것도 행복의 과정
스타벅스가 사람들의 대화나 업무 시간을 사들이듯, 다이소는 심심함의 시간을 점유한다. 방과 후 혹은 퇴근 뒤 구경 삼아 들르기(그리고 요즘 다이소에서 패딩까지 파냐며 놀라워하기), 펀치 니들(Punch Needle·자수 공예)과 같이 취미에 입문하기 위한 아이템 찾기, 만년필처럼 고가의 물건을 시험 삼아 써보기, 학용품을 꾸미기 위한 스티커 고르기,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이나 좋아하는 그림 작가의 작품을 매장에 비치된 프린팅 박스로 인쇄해 굿즈(goods·팬덤 상품)로 제작하기, 품절 대란인 메이크업 제품을 오픈런(open run·매장 오픈 전부터 대기하다가 입장하는 것)해 찾기, 그래서 ‘다이소깡’(다이소에서 산 상품 개봉하기) 영상 콘텐츠로 남기기…. 과거 주부나 자취생만 들르던 생활용품 숍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등극한 이유다.
그리고 이 모든 ‘다이소 놀이’의 공통 놀이는 소확행, 바로 ‘소소한 확률 게임 행복’이다. ‘일반템’과 ‘똥템’ 사이에서 ‘꿀템’을 찾아라! 여기서 중요한 건 ‘똥템’ 자체도 그 행복의 과정이라는 거다. 무엇이 ‘다이소의 실수’여서 쟁여놔야 하는지, 무엇은 사지 말아야 하는지 판별하고 큐레이션(선별)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다. 또 한번 ‘똥템’으로 판별된 상품이더라도 창의적인 활용이나 리폼에 따라 ‘꿀템’으로 거듭나는 잠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건 콘텐츠를 넘어 ‘실패할 자유’를 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시민들은 내 친구가 ‘온라인 폐지 줍기’라고 부르는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 각종 광고를 시청하거나 앱 다운로드 등을 통해 온라인 포인트로 적립하는 식으로 시간과 주의력을 남김없이 수익화하거나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며 불황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방울의 누수 없이 동여맨 삶의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다이소다.
다이소·올리브영·편의점의 공통점
최근 다이소의 주요 키워드는 ‘올리브영 대항마’다. 유명 뷰티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로 ‘갓성비’ 뷰티템으로 품절 대란을 일으킨 것이다. 사람들은 뷰티 드러그스토어(drug store·생활 잡화점) 시장을 사실상 지배한 씨제이(CJ)올리브영의 아성에 제동을 건다며 반기고 있다. 기존 시장가 허들을 크게 낮추며 등장했던 뷰티 브랜드 미샤나 메가커피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럼에도 크게 보면 독점 플랫폼 기업끼리의 대결 구도이다. 그전까지는 올리브영에서 본 상품이 비싸다 싶으면 대신 쿠팡이나 무신사에서 주문한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다른 중소 기업 혹은 인디 브랜드들을 흡수하며 점점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그 안에서 저가 경쟁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독점 플랫폼들의 공통점이자 성공 포인트는 ‘패스트 리빙’이다. 다이소 ‘꿀템’들은 길게 보면 낭비라는 반응이 많다. 펜심의 양이나 테이프의 점성, 공구의 강도 등 핵심 품질이 떨어져서 이사할 때나 비상시, 꾸미기 등 부수적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손때를 허락하지 않는, 도시인의 시간성이다.
3만여 개의 상품을 갖췄다는 다이소에서 놀라운 것은 매주 갱신되는 목록이다. 올리브영 매대도 몇 필수품을 제외하면 신상품으로 바뀌는 주기가 새삼 놀랍다. 일종의 ‘팝업 스토어적’ 시간성이다. 다이소와 올리브영도 그렇지만, 지역 맛집의 음식을 간편식이나 밀키트 신상품으로 출시하는 편의점도 그렇다. 장기적으로 쓰기보다는 빠르게 소유하고 색다르지만 일시적인 경험으로 삼고는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이건 도시(특히 수도권)의 공간성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다이소 꿀템의 대다수는 정리와 수납을 돕는 상품으로, 이미 최대로 활용해낸 주거 공간에서 새로운 틈새 공간을 창조하는 형태다(북엔드를 침대 매트리스 옆면에 끼워 아이패드나 잡지를 수납하는 아이디어가 유명하다).
‘패스트 리빙’ 시대 매주 갱신되는 목록
어떤 사람이든 다 있는 듯한 다이소 매장에서 문득, 여기서는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유모차를 끄는 보호자. 공간 가성비를 최대한 활용해 상품을 진열하느라 ‘7층 석탑’(서울 홍대 2호점), ‘12층 석탑’(명동점)이라는 별칭처럼 좁고 높다란 구조의 건물에 입점한 것처럼 공간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다이소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윤을 내는 기업이다. 그렇지만 다이소 매장 곳곳에 걸린 슬로건 역시 크게 보인다. “국민가게, 다이소/ 대한민국 기업 다이소/ 더 높은 품질로/ 고객을 더 높이겠습니다/ 더 낮은 가격으로/ 고객 앞에 더 낮아지겠습니다”
다이소는 명실상부 국민가게가 됐고, 그래서 현대 도시인의 삶을 상징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그 상징의 내용은 무엇으로 기록될까? 무엇이든 간에 공간 접근성은 물론 노동자의 노동 여건부터 납품업체와의 관계, 다이소 주변 영세 상인과 골목시장에의 영향,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 쓰레기 문제는 꼭 언급될 것이다. 국민으로서 그 역사가 자랑스럽게 쓰이기를 바란다.
글·사진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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