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신군부 맞선 이건영…한센인의 벗 피사렉 수녀[아듀 2023 송년 기획-우리 곁을 떠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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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곁의 온기로, 냉철한 시야로 살아낸 삶…그대로 길이 되다
혼돈의 2023년, 세계에 족적을 남겼던 인물들도 하나둘 숨을 거뒀다. 그들이 걸어 온 발자취와 남긴 흔적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마주한 후대가 나아갈 길을 밝히기도 했지만 적잖은 과제도 안겨줬다. 올해 ‘진별’들을 되돌아본다.
1992년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했던 이상옥 전 외무부 장관이 1월6일 89세로 별세했다. 1957년 외무부에 입부해 미주국장 등을 거쳐 노태우 정부 때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1992년 8월24일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베이징 댜오위다오 국빈관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한국전쟁 후 40년 동안 이어진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 현장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에 맞섰지만 아군 간의 유혈 사태를 우려해 병력 출동을 하지 않았던 이건영 당시 육군 3군사령관이 3월11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그는 1980년 1월 강제 예편 후 보안사 수사를 받았다. 이후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모두 참전한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9월11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서울 경기고 재학 당시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11기로 군인 생활을 시작해 베트남전쟁 당시 맹호부대(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연대 1대대장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 섰다. 전두환 정권 시절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지냈고, 노태우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며 목회활동을 펼쳐온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는 2월3일 55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 목사는 한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3년 강남향린교회 전도사를 맡으면서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성소수자들의 벗’으로 불린 그는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성소수자 권리옹호 운동을 벌였으며, 보수 개신교가 반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왔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영수 할머니(향년 94세)와 김재림 할머니(향년 93세)가 각각 5월11일과 7월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양 할머니는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1944년 광주대성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도 1944년 능주초등학교 졸업 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끌려갔다. 지난 21일 대법원은 이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2차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네이버 지식인(iN) ‘태양신 할아버지’로 알려진 조광현씨가 3월29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씨는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33년간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2004년부터 활동하며 노환이 심해지기 전까지 총 5만3839개의 답변을 남겼다. 조씨의 별세 소식에 누리꾼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젊은 어른이 세상을 떠나셨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자란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는 1962년 소록도로 파견을 왔다. 공식 파견 기간이 끝난 후에도 남아 자원봉사자로 43년간 한센인을 돌봤다. 2005년 “소임을 다했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9월2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은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2012년 8월에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학생인권조례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서울시의회가 통과시킨 ‘학생인권옹호관’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대법원에 내기도 했다. 지난 5월29일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울산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이었다. 병원 근처에 살며 24시간 대기해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수술실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16일에도 새벽까지 수술을 한 뒤 귀가했다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정환보·신주영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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