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폭우 때 맨홀 추락사에 “서초구 16억 배상하라” 판결
‘천재지변’ 주장 불인정…‘폭우 사망 지자체 배상’ 첫 판결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 당시 서울 서초구 맨홀에 빠져 숨진 남매의 유족에게 서초구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초구가 맨홀 설치·관리에 소홀해 사고가 발생했으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이다. 법원이 지난해 폭우 피해에 대한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27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허준서)는 지난해 여름 맨홀에 빠져 숨진 남매의 유족이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서초구는 원고들에게 약 16억47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4일 판결했다.
지난해 8월8일, 수도권에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과 주택, 도로가 순식간에 침수돼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당시 차를 몰고 지나던 남매는 폭우로 차량 시동이 꺼지자 서초구의 한 도로에 정차하고 바깥으로 대피했다. 이들은 비가 조금씩 잦아들자 집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도로를 건너다 뚜껑이 열린 맨홀에 빠져 숨졌다. 이후 남매의 유족들은 “국가배상법상 서초구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서초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재판부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강남역 일대는 지대가 낮고 지형이 항아리 모양이라 폭우나 홍수 때 상습 침수되는 곳으로, 빗물이 역류해 맨홀 뚜껑이 열릴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서초구가 안전하게 관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은 ‘도로나 하천 등 공공 영조물(토지에 설치하는 고정적인 구조물)의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어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국가나 지자체는 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서초구 측은 이번 사고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천재지변’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의 주장은 통상적인 폭우 상황에서는 맨홀 뚜껑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2011년 7월 집중호우 때도 맨홀 뚜껑이 이탈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법원은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나 지자체의 배상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판례는 다르다. 2017년 서울고법 민사29부(재판장 민유숙)는 지자체의 책임을 보다 엄격하게 따지는 판결을 내놓았다. 2011년 폭우로 발생한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다 매몰된 피해자에게 서초구와 경찰이 약 4억7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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