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나쁜 것만 따라가네”…쉬운 교육 외치다 교실붕괴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3. 12. 2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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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학년도 수능서 ‘심화수학’ 신설 불발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42%
기초수학·초급 미적분 수강
“고교과정 복습해야할 수준”
AI시대 미적분·기하 더 중요
첨단기술 학습기반 붕괴우려
“어렵다면 재미있게 가르쳐야”
교육부가 현 중2 학생부터 적용될 ‘2028 대입 개편안’을 발표한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 비치된 고등수학 미적분, 확률과 통계 관련 문제집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왜 점점 더 수학을 약화시키는 거죠? 어렵다고, 사교육 잡자고 수학 과목을 없애면 수능도 없애야 되죠.”(차상균 서울대 교수)

2028학년도 수능에서 수학영역 선택과목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이 신설되지 않는다는 27일 교육부 발표에 이공계 교수들은 입을 모아 걱정을 쏟아냈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지금보다도 더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적분과 기하 중 하나만 공부해도 이공계열로 진학할 수 있게된 통합수능 이후 이공계 학력저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서울대에 따르면 올해 이공계 신입생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 특별시험 결과 저득점을 맞아 ‘기초수학’과 ‘미적분학의 첫걸음’ 수강자로 분류된 학생이 전체의 41.8%였다. 서울대에 따르면 기초수학과 미적분학 수강반 학생들은 고교 수학 과정을 다시 공부해야 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이다. 통합수능 첫해인 2022학년도 저득점자 비율 30.3%와 비교해 11.5%포인트 늘었다.

빅데이터 분야 석학으로 서울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는 이날 매일경제에 “미적분과 기하는 이공계 뿐 아니라 경제학, 예술에도 필요한 내용”이라며 “어렵다고 범위를 줄일 게 아니라 재미있게 가르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일 대한수학회장(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도 “교육은 과목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 각 학년 수준에서 꼭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면서 “쉽게 가르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어렵다고 빼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수영 아주대 수학과 교수 역시 “학생들이 미적분과 기하 학습을 할 수 없으니 전체적인 수학 학력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한국판 유토리 교육(일본의 실패한 교육 모델)이 시작된다”고 했다.

미적분과 기하는 기업에서 활용하는 첨단기술의 기초로, 수학을 못 하는데 실무를 잘하는 인재는 기대하기 어렵다. 최수영 교수는 “학생들의 평균 수학 실력이 떨어지면 산업체 등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리가 없다”며 “지금도 취업준비생들의 학력이 낮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제는 선을 넘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차상균 교수는 “지금은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인 멀티모달 AI 시대”라며 “이럴 때일수록 미적분과 기하가 더 중요해지므로 심화수학을 줄이기는 커녕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수학 전문가들은 고등학교에서는 꼭 필요한 수학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대학에서 가르치면 된다는 주장이 넌센스라고 말한다. 박종일 회장은 “서울대만 하더라도 특목고·과학고 출신 학생들과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수학 기본능력 차이가 큰데, 대학에서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육하기가 너무 힘든 상태”라면서 “심화수학은 이공계를 위한 필수수학인데 이걸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온다면 대학에서 미적분과 기하를 가르치면서 4년 안에 졸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물리가 선택과목으로 바뀌고 나서 응시자 수가 적어졌고, 시장이 작아지니 교과서와 참고서 질도 낮아졌다”며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면 다 쉬운 길로 가면서 학습 기반이 축소된다. 수학도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학 범위를 줄인다고 사교육 시장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금종해 전 고등과학원 원장은 “이공계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문과 수학만 공부해서 오면 대학에서 최소 두 학기는 수학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면서 “가르치는 내용을 줄인다고 해서 수학 시험이 쉬워지거나 사교육 수요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일 회장도 “지난 20~30년간 꾸준히 교과과정을 줄여왔지만 사교육시장은 반비례해져서 커졌다”고 “사교육을 잡는 것이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됐는데, 사교육 문제는 입시 시스템의 문제지 교과 과목 범위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고등학교 수업에서 충분히 미적분과 기하를 배우고 대학이 학생부를 통해 학생의 수학적 역량과 심화학습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챗GPT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이상의 역할을 하는 시대이고, 수학을 교육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져야 한다”면서 “그동안 우리 수능에서는 너무 어려운 수학을 문제풀이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아이들이 흥미를 잃거나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수학을 더 재미있게 공부하고, 아이들이 미래에 필요한 수학적인 역량, 사고력·문제해결 역량을 갖추도록 하려면 심화수학을 제외하고 필요한 역량을 중심으로 집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그동안 너무 힘든 영역을 모든 아이에게 공부하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교육을 많이 유발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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