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독일, 대만식 ‘인생 진로 결정법’
독일 초등학교는 4년제다. 4학년 말이 되면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면담을 요청한다. 학업 성적과 학습 태도, 성실성 등을 근거로, 대학에 갈 학생인지, 직업학교행 학생인지 통보한다. 대학 진학 코스인 김나지움엔 전체 학생의 30% 정도만 간다. 만 열 살에 인생 진로가 정해지는 셈이니 어찌 보면 잔인한 제도다. 유럽 특파원 시절 만난 독일 학부모는 “대부분 교사의 추천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지만 집에 가서 눈물을 흘리는 학부모도 간혹 있다”고 했다.
▶독일 학부모들이 자녀의 직업학교행 통보를 대부분 수용하는 이유는 독일 직업교육 제도가 워낙 믿을만하고, 기능인의 삶이 대졸자 못지않게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5~10년 실업 학교를 거친 다음, 기업과 정부가 함께 운영하는 3~4년제 전문 기술학교에 진학해 월급을 받으며 기술을 배운다. 졸업 후 기업에 취업하면 급여를 대졸자 임금의 90% 이상 받는다. 기술을 더 익혀 ‘마이스터’ 자격을 따면 대졸자 이상의 대우를 받고 직업학교 교사도 될 수 있다.
▶중세 동업자 조합인 길드(guild)의 도제식 교육법이 독일 직업교육의 뿌리라고 하는데, 아시아권에도 성공 사례가 있다. 대만에선 중학교 3학년 때 대학 진학을 위한 일반고와 직업학교(대부분 공업고) 진학으로 진로가 나뉜다. 공업고를 가면 일반 대학 진학이 안 되고, 직업훈련 기관인 과학기술대학만 진학이 가능하다. 과기대 졸업생은 TSMC 같은 대기업에서 대졸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얼마 전 대만 여행 때 만난 현지인은 “명문고로 이름난 공업고가 많고, 그런 학교에 합격하면 마을에 플래카드가 걸린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독일 직업교육 제도를 본떠 ‘기술 명장’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마이스터고’를 만들었다. 전국 마이스터고 47곳의 평균 취업률이 80%에 이르는 등 취업률은 대졸자보다 훨씬 좋다. 입학 경쟁률이 3~4 대 1에 이르는 곳도 있다. 하지만 학벌 중시 문화 탓에 대만처럼 명문고 반열에 오른 학교가 나오려면 멀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교육 등에서 과도한 경쟁이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했다. 같은 날 한국은행은 전국 제조업 공장에서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고교 졸업생 70%가 대학을 진학하는데 구직을 포기한 채 집에서 노는 청년이 68만명에 달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에 돈을 쓰느라 부모들은 노후 대비를 못 해 노인 빈곤율이 세계 1위다. 독일·대만식 청소년 진로 결정 모델이 우리나라에선 정말 불가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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