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극복· 통독 큰역할 쇼이블레 독일 전재무장관 타계…81세

김재영 기자 2023. 12. 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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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8년 간 메르켈 정부 재무장관…유로존 위기극복 주도
타계 때까지 51년 간 의원직…1990년 암살 저격으로 하반신 마비
[AP/뉴시스] 26일 타계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전재무자관의 2017년 EU 재무장관 회동 당시 사진.

[베를린=AP/뉴시스] 김재영 기자 = 30여 년 전 독일 통일 때 내무장관 및 10여 년 전 유럽의 부채위기 때 재무장관으로 확고한 긴축 정책을 펴 독일 및 유럽의 위기 회복에 큰 업적을 남겼던 볼프강 쇼이블레 전 장관이 26일 81세로 타계했다.

쇼이블레는 같은 보수파 앙겔라 메르켈 총리 주도의 연정에 2009년 10월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직후에 그리스의 폭증하는 재정 적자가 드러나면서 유럽 대륙 전체가 휩쓸리고 나아가 세계 금융 질서가 흔들리는 부채 및 금융 위기가 터졌다.

유럽통합을 오래 전부터 지지해온 쇼이블레는 이 위기 상황에서 통합을 심화하고 유럽연합과 유로존 내 금융 재정 원칙을 엄격히하는 자세로 나갔다.

쇼이블레가 주도한 독일의 긴축 기조로 유럽 경제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할 수 있었으나 그의 냉정한 긴축은 유럽 제일 경제국 독일을 향한 '관대함이 결핍된 나라'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쇼이블레는 8년 동안 재무장관을 맡은 뒤 메르켈 주도 연정 마지막 시기에 연방 하원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1년 9월 총선서 메르켈의 기독민주연합 및 기독사회당 보수파는 그간 대연정의 주니어 파트너였던 사회민주당에게 크게 뒤져 16년 만에 집권당에서 탈락했다.

1972년 연방 의회에 진출했던 쇼이블레는 계속 의원으로 남아 타계할 당시 51년 간 연속 재임한 최장 복무 의원이었다.

특히 쇼이블레는 48세 때인 1990년 정치 집회 중 정신 병력의 남자로부터 저격 당해 허리 아래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후 쇼이블레는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으며 독일 언론은 대부분 뉴스에서 그의 상반신만 촬영했다.

1990년은 독일이 통일되던 해로 쇼이블레는 수 주 후에 의원 일을 재개했고 이때 통독의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의회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현 사민당 주도의 연정을 이끌고 있는 올라프 숄츠 총리는 27일 X에 "반세기 넘게 의원으로 장관으로 의장으로 우리 나라의 틀을 만드는 데 힘썼다"면서 "그의 타계로 독일은 예리한 사상가, 정열적인 정치가 및 전투적인 민주 전사를 잃었다"고 말했다.

쇼이블레는 유럽 부채 위기 초반부터 정부의 재정 적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재정준직 원칙 제정을 밀어부쳤다. 독일 연방정부는 코로나 등 비상사태 외에는 매년 재정적자가 GDP의 0.35% 선를 넘어선 안 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기조로 독일은 그리스 등 부채가 많은 유로존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주는 것을 꺼려했다. 여기서 독일이 유로존 및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결과적으로 위기 극복의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AP/뉴시스] 2014년 연방 하원에서 예산안 연설하는 쇼이블레 장관. 48세 때인 1990년 한 남성의 두 발 총탄 저격을 받아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구제금융을 허용하기로 한 독일은 이때 조건으로 대상국에게 예산 감축 등을 엄히 요구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스 국민들과 정치가들은 복지 지출의 대폭 삭감을 강력히 요구하는 독일 및 쇼이블레에 대한 원망이 심해 유로존 탈퇴가 논의되기도 했다.

그리스는 부채 위기 10년이 지나면서 경제가 빠르게 좋아져 코로나 위기 때에는 다른 유로존 국가들보다 경제 타격이 약했고 빨리 회복했다.

쇼이블레는 통독 전후부터 큰 재정 적자에 시달려왔던 독일 국가 재정을 처음으로 적자의 빚이 없는 균형 재정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독일 밖 비판자들은 독일의 이런 재정 절제로 유로존 전체의 통화 위기 회복이 지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쇼이블레는 1942년 9월 남서부 바덴-뷔르템부르크에서 태어나 30세인 1972년 연방 의회에 진출했고 1984년 헬무트 콜 총리의 비서실장을 5년 간 맡은 뒤 통독 무렵 내무장관이 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9일 무너졌고 쇼이블레는 동독과의 통일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통일독일의 법적 틀을 정한 조약이 1990년 10월3일 통과되었다.

통일이 이뤄진 아흐레 뒤 쇼이블레가 통독 후 첫 선거 유세 중 총을 맞은 것이다. 총탄은 그의 척추에 들어가 마비시켰으며 다른 한 총탄은 얼굴을 쳤다. 쇼이블레는 성형수술을 해야 했다.

메르켈이 첫 총리에 오른 2005년 다시 내무장관이 되었고 4년 뒤 재무장관이 되어 유럽 부채위기와 맞섰다.

☞공감언론 뉴시스 kj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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