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2·12 총격전 때 별들은 숨었다"…영화보다 더 한심한 '진실'

유선의 기자 2023. 12. 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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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수 천만명을 넘기면서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국민들 관심도 높아졌죠. 저희 취재진이 당시 반란군 측이었던 1공수여단 소속으로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던 한 장교를 만났습니다. 44년 만에 털어놓은 진실은 영화보다 더 한심했습니다.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오늘 밤 승부처는 누가 먼저 전투병력을 서울로 진입시키는가에 달려있다."
-영화 '서울의 봄'

12·12 군사반란 당시 이모 씨는 1공수여단 소속 중위였습니다.

영화에 나온 '행주대교 충돌'을 겪었지만 극적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이모 씨 : 부대(1공수)에서 출발해서 행주대교를 건너서 수색 쪽으로 가게 되죠. 1차 충돌이 여기 초소에서 있었고. 2차로 수경사 경비병들과 간단한 충돌이 수색에서 있었고. 3차 충돌은 신촌로터리에서 있었고.]

말단이지만 간부였습니다.

가장 앞 쪽 군용트럭에 탔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할 때까지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이모 씨 : 무전 온 게 무조건 통과하라. 명령 내리는 사람들은 다 뒤에 있어. 대대장이 앞에서 내려서 지프(차량)타고 가면서 '여기서 내려. 통과해' 이런 게 아니라, 없어. 아무도 안 보여.]

박희도 당시 1공수여단장은 그 날 밤 육군본부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박희도 : 장태완(수도경비사령관)이가 막 장군들한테 욕을 하면서 탱크로 뭉개버리겠다고 욕을 하고 그랬어요. 그 소리를 듣고 국방부장관을 빨리 찾아가지고 결재를 받아야겠다고 해서 내가 육군본부로 간겁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그를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모 씨 : 새벽에 상황 종료될 때까지 여단장, 박희도 씨 본 사람은 없어. 총격전인데 이 사람이 나오겠어, 그 전 과정에서도 전혀 안나타났는데.]

육본을 장악한 뒤에 간 국방부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숨어 있던 건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위 장성들이 대부분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는겁니다.

[이모 씨 : 씁쓸한 게 그렇게 밖에서 충격이 나고 난리 치는데도 그 안에 의외로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었어, 장군들이. 총소리가 나니까 안에서 문 걸어 잠그고 안 나오는 거예요.]

억지로 문을 열면, 상황을 물어보고 다시 숨었다고 했습니다.

[이모 씨 : 이제 물어보는 거지 '무슨 일 났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저희도 출동은 했는데 지금 일단은 뭐 국방부 장관 찾는 건데 저도 잘 모르겠다고. 그냥 내가 볼 때 안 나오고 그냥 계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랬지.]

44년이 지난 지금, 아무도 모르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전우여 들리는가 그 성난 목소리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영화 엔딩에 나오는 이 군가에서 애타게 부르는, 전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선 영화가 흥행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숨진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이 재조명받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는, 자신의 전우인 1공수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모 씨 : (정부 측에서) 대응 사격해서 쏜 게 들어가던 우리 무전병이 맞아서 얼굴이 반쪽이 날아갔거든요. 그게 반쪽 날아가가지고, 걔는 거기서 총을 맞았고.]

1공수에서 최소 대여섯 명이 수도통합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는겁니다.

하지만 반란군이라는 이유로 숨어 지냈다고 했습니다.

[이모 씨 : 박희도 씨나 그 위에 사람들만 목적과 취지를 알고 자기들이 (반란을) 했지. 나머지들은 목적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우린 그냥 그냥 군인이니까 명령에 따라서 그대로 했고.]

승자의 보상은, 죽거나 다친 전우가 아닌 '고위급'이 챙겼다고 했습니다.

[이모 씨 : 초급장교나 하사관이나 대다수의 병력들은 작전이 다 된 다음에 회식할 때 잘 먹은거, 푸짐하게 먹은 거 외엔 없고. 그 외 (1공수) 영관급 장교들은 내가 알기로 100% 진급이 다 된 것으로 알고.]

실제로 박희도 씨는 12·12 직후 투스타로 진급했고 육군참모총장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1공수 소속 사상자들에 대한 기록은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 기록'에서도, '12·12 대법원 판결문'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운영 콘텐트서비스팀 / 취재지원 서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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