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엄마 납치…이스라엘 대사관 '서울 테러' 영상 삭제 [미드나잇 이슈]
“당신이라면?” 가자지구 공격 정당성 주장
韓네티즌 “전쟁 공포 조장 선 넘어…불쾌하다”
성탄 연휴에도 대규모 공습…“사상자 820명”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페이스북에 26일 충격적인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은 크리스마스날 아침,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하윤이가 빨간 장갑을 끼고 성탄절 노래를 부르는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윤이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그 모습을 촬영한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며 하윤이네를 걱정하는 가족 문자가 빗발친다.
해당 영상은 하마스의 납치·테러 실상을 알리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작됐다.
국민 200여명이 숨지고 240명이 납치되는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집권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보복공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될수록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 피해가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로부터 ‘과도한 보복이자 학살’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러한 반이스라엘 여론은 한국에서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팔레스타인인과 한국 시민단체 회원 등이 가자지구 공습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 대사관이 공개한 영상은 ‘한국이 이스라엘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는 물음을 현실감 있는 영상으로 전달해 한국 내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에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동아시아의 한국 분들에게 가자 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지난 10월 7일의 끔찍한 테러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라며 영상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서울 테러’ 가정 영상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북한이 지속해서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내며 한반도 안보 불안을 높이는 가운데 자극적인 영상으로 전쟁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주재국 상황을 악용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 영상을 접한 네티즌 te***씨는 “한국은 휴전국가다. 남성들이 군대에 갈 뿐만 안니라 연평도 포격 도발 등 실제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기도 한다”면서 “전쟁의 끔찍함을 잘 알고 있는데, 자국민도 아닌 타국이 ‘전쟁 스트레스를 겪어봤냐’고 윽박지르듯 이런 영상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단히 불쾌하다.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 di***씨는 “이 영상은 큰 실수 같다. 지지 여론 필요한 것 같은데 이 영상으로 인해 불쾌감이 커져서 오히려 한국 국민의 여론은 매우 나빠질 것”이라며 “이스라엘 대사관이 국내 정서를 하나도 모르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굳이 이런 영상을 제작해 한국 사람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자극한 점이 아쉽다”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외교적으로 좋지 않은 방법이다. 오히려 논란을 낳아 한국 내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이스라엘대사관은 결국 27일 문제의 영상을 삭제 조치했다. 우리나라 외교부 당국자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살상과 납치는 정당화될 수없으나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이를 타국 안보 상황에 빗대어 영상을 제작·배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우리 입장을 주한이스라엘대사관에 전달했으며, 이스라엘 측은 해당 동영상을 삭제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전멸’을 목표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은 성탄 연휴인 24~25일에도 가자지구에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최소 320명이 사망하고 500여명이 다쳤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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