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보내며 곱씹는 백남준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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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2일 새벽 2시 한국인 680만명이 텔레비전 앞에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시청했다.
첨단미디어에 잠식될 것으로 예고된 1984년이 되자 백남준은 냉큼 오웰에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며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고 메시지를 띄운 셈이었다.
1960년대 독일에서 유학하던 백남준의 눈에 이미 영상미디어의 영향은 막강했고, 오웰의 소설 속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텔레비전 앞에 바보처럼 앉아있을 인류의 미래는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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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1984년 1월2일 새벽 2시 한국인 680만명이 텔레비전 앞에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시청했다. 백남준 기획으로 뉴욕과 파리에서 송출하는 생방송이었다. 뉴욕은 1일 정오, 파리는 1일 오후 2시였다. 뉴욕 방송국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동시 진행하는 공연을 대서양 횡단 인공위성이 연결했다. 이날 방송을 미 대륙은 물론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일본 등에서 최소 2000만명이 시청했다. 단 몇백명에게 선보일 공연 제작비보다 적은 비용으로 지구 북반부 절반을 커버한 위성쇼였다. 백남준이 1984년에 확신한 과학기술의 미래는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로운 풍경이었다.
정보통신 사회를 비관했던 이도 있었다. 조지 오웰은 1949년 출간한 소설 ‘1984’에서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오웰이 상정한 세계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거대권력이 무수한 관계망 속에서 빅브라더를 작동시키는 전체주의 사회였다. 체제는 흠결이 말소된 거짓된 무결점을 개인에 주입하는 한편 끊임없이 감시하고 교정하는데, 이때의 장치는 일기를 쓰는 사적 공간에서도 작동하는 텔레스크린이다. 방안까지 들어온 텔레스크린은 수시로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본다”고 경고한다. 도처에서 개인을 감시할 통신기술과 미디어의 위협에 대한 오웰의 경고이기도 했다.
첨단미디어에 잠식될 것으로 예고된 1984년이 되자 백남준은 냉큼 오웰에게 “굿모닝” 인사를 건네며 “당신은 절반만 맞았다”고 메시지를 띄운 셈이었다. 백남준은 1시간 분량 쇼에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대거 불러 모았고, 팝밴드, 코미디언, 댄서들도 등장시켰다. 공연을 실연한 아티스트 수만 100명이 넘었다. 전 지구가 한날한시에 텔레비전 앞에 모여 화려한 볼거리를 즐긴 이날의 장면은 시공간의 한계도 문화의 경계도 사뿐하게 넘는 미디어기술의 한 단면이었다. 오웰의 예언처럼 인류는 미디어의 영향 아래 살지만, 또한 긍정적으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백남준의 믿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무모하거나 무책임한 낙관주의는 아니었다. 1960년대 독일에서 유학하던 백남준의 눈에 이미 영상미디어의 영향은 막강했고, 오웰의 소설 속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텔레비전 앞에 바보처럼 앉아있을 인류의 미래는 걱정스러웠다. 서구 클래식의 상징인 바이올린을 부수는 연주로 악명을 떨치던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해체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전자매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된 백남준은 영상을 조작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비디오신디사이저를 개발해 영상을 합성하고 편집할 수 있게 했다. 일방으로 방송을 수신하는 시청자가 아닌 누구든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오늘의 풍경을 백남준은 이미 1970년에 제시했다.
광케이블을 통한 초고속 정보 이동을 의미하는 ‘정보고속도로’ 역시 1974년 백남준이 록펠러재단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주장한 개념이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된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는 백남준이 어느 날 새벽 동료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틀렸어. 정보의 고속도로가 아니야. 우린 바다 위 배에 있고 해안이 어디인지 몰라”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인터넷 세상이 도래하기 전 정보의 바다를 그리며 첨단기술이 불러올 위기를 우려했던 그였다. 그런 백남준이 생전에 말했다.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이 치열했다면 내일은 아름다울 것이라는 그의 희망을 2023년의 끝에서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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