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해예방·경제’ 두 토끼 잡기… 勞는 반발

이민경 2023. 12. 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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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법 시행 2년 유예 추진
83만7000곳 안전진단 실시도
사업장 교육·기술 지원 확대
노동계 “안전 대책 포기” 비판
野선 부정적… 법 개정 미지수

내년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2년 유예를 추진하는 대신 안전관리에 1조5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추가 유예를 요구한 경영계와 이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야당 협조 없이는 법 개정이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이번 방안은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국민의힘과 고용노동부 등은 27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50인 미만(5∼49인) 사업장의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확대할 경우 재해 감소보다는 폐업 등의 부작용이 클 수 있다”며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하되 80만개에 달하는 대상 기업에 충분히 지원하고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중대재해도 줄이고 경제도 살리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대재해 지원대책에 따르면 고용부와 공공기관,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추진단이 구성된다. 추진단은 전체 50인 미만 사업장 83만7000개를 대상으로 자체진단하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업장별 중대재해 위험도 등을 분석하고 8만여개의 중점관리 사업장을 선정해 컨설팅·인력·장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교육·기술지도 지원도 확대한다. 외국인력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부족한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아울러 안전관리자 자격인정 요건을 완화하는 등 2026년까지 전문인력 2만명을 양성할 방침이다. 600명의 ‘공동안전관리전문가’도 양성해 50인 미만 사업장이 안전관리 컨설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

원청 대기업이 하청기업에 대한 안전보건 상생협력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도록 인센티브를 적극 부여하는 등 민간 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관련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중대재해 예방·감축을 위해 내년 1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이후 성과 평과 등을 통해 내후년에도 지원을 지속 확대할 예정이다.

당정은 이 같은 지원대책과 함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유예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1월부터 근로자 50인 이상 기업에 적용돼 온 중대재해처벌법은 다음 달 27일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앞두고 있다. 이번 대책은 당정이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추가 유예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표됐다.

노동계는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 대책을 포기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날 성명을 내고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더 이상 유예돼선 안 된다”며 “정부는 사용자 단체의 대변인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할 본분을 가진 정부 부처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정의당 등도 이날 국회 앞에서 법 적용 유예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하자고 하는 것은 2400명(한 해 평균 산재 사망자 수)을 계속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추가 유예를 요청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83만이 넘는 50인 미만 사업장 대다수는 만성적인 인력난과 재정난, 정보 부족으로 법 시행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2년이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심정으로 정부, 근로자와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나갈 것이며 유예기간 연장 이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당정협의회 회의장 앞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될지는 미지수다. 유예를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50인 미만 기업 적용 유예를 골자로 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처리에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법 확대 적용 준비 부족에 대한 정부 사과 △유예기간 중 50인 미만 기업 지원계획 제출 △정부·경제단체의 유예기간 종료 후 법 적용 확대 약속 등 조건을 충족할 경우 법 개정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이날 통화에서 “내일 우리당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정부로부터 보고받은 내용 기준으로 보면 미흡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민경·김승환·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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