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싸이월드·네이버 거친 `커뮤니티 전문가`… "끼 넘치는 누구나 그리퍼죠"
네이버 블로그·카페도 임 본부장 작품
김한나 대표 창업철학 공감에 '그립' 합류
"내년 유튜브·틱톡 버금갈 콘텐츠 강화할것"
임삼열 그립컴퍼니 콘텐츠 운영본부장
#1 .부천 역곡시장. 기름을 한껏 두른 먹빛 철판에서 빈대떡 반죽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소리와 냄새에 이끌려 가게를 찾는 손님도 있지만, '진짜 손님'은 스마트폰 너머에 있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Grip)'을 통해 수백명의 시청자가 상상빈대떡을 만난다.
#2. 택시 안. 급하게 라이브를 켠 한 여성이 화면 너머로 잔뜩 흥분된 목소리를 전달한다. "제가 전에 OOO에서 나온 디퓨저를 여러분께 소개드렸잖아요? 이번에 그 브랜드에서 다른 상품들도 판촉을 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지금 가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보고 싶은 상품이 있으면 뭐든 말해주세요.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져오겠습니다!"
네이버, 쿠팡, 카카오. 내로라하는 거대 플랫폼이 뛰어든 라이브커머스 시장에서 그립은 돋보이는 플레이어다. 홈쇼핑처럼 정형화된 형식을 차용한 여타 플랫폼과는 다르게 그립은 '무규칙' 그 자체다. '시청자와 소통하고, 친근감을 이끌어내면서 팔고자 하는 물건을 소개할 것' 유일한 목적만 지킨다면, 어떤 소통 방식이라도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립의 매력이다.
"각각의 '그리퍼'(Griper)가 저마다 자신의 고유한 라이브셀링 문법을 만들고, 자신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팬을 모으고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그립입니다."
'그리퍼'는 그립에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쇼호스트다.
최근 성남시 분당구 판교 사옥에서 만난 임삼열(47·사진) 그립컴퍼니 콘텐츠 운영 본부장(Chief Contents Officer)는 "그립의 코어는 다른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인플루언서인 '그리퍼'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나온 임 본부장은 지난 2001년 싸이월드에서 서비스 기획 담당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커뮤니티 전문가'다. 지금도 유튜브 등에서 널리 퍼져있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기획한 이가 바로 임 본부장이다. 네이버로 이직한 뒤에는 그의 손에서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등이 탄생했고, 스노우에서도 서비스&콘텐츠 기획 리드를 맡았다. 한화생명에서 플랫폼팀&소셜플랫폼 담당 상무를 역임하기도 했다.
임 본부장이 그립에 합류한 데에는 김한나 대표와 쌓아온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그립을 창업한 한나님과 스노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당시 마케팅 리드로서 사내에서 일을 가장 탁월하게 해내는 분이었고,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서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자'는 창업 철학에도 깊이 공감했죠. 창업 초기에 라이브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저희 아내가 라이브를 켜기도 했는데, 알고보니 그때부터 '영입 1순위'로 점찍고 있었더라고요."
그립은 창업 3년만인 지난 2021년 카카오에 1800억원을 투자받은 회사다. 이처럼 높은 기업 가치를 만들어낸 것은 그립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셀러들이다. "정말 각계각층의 분들이 오셔서 자기 상품, 자기 콘텐츠를 셀링하고 계세요. 수산시장에서 라이브를 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중도매인 분은 시청자들의 요청을 받아 과일 경매에 대신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그리퍼는 아이돌 지망생 출신의 '마녀옷장'이라고 했다. 무대를 누비던 지구력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류와 장신구 등을 직접 착용해가면서 판매한다. 특이한 점은 모든 상품을 '선착순'으로 한정된 수량만 판매한다는 것이다. 완판이 이어질수록 분위기는 고조되고, 시청자는 환호한다. "마녀옷장님의 판매 방식을 보고 '선착순 판매' 기능을 개발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그리퍼의 니즈에 맞춰 서비스를 고도화해나가는 것이 그립의 방식이죠."
임 본부장은 "그립은 상품을 고르는 능력이 탁월한 전문가 뿐만 아니라, 타고난 끼가 넘쳐나는 인플루언서라면 누구나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퍼의 이미지와 성향에 따라 '맞춤형 브랜드'를 연결해 판매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예컨대 한 그리퍼는 매일 아침 7시부터 홈트레이닝 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그 콘텐츠에 맞게 뷰티 제품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을 매칭하는 것이다.
단순히 앱을 통해 접속하는 이용자들만 그립의 고객이 아니다. SSG, 올리브영, 큐텐 재팬 등과 같은 '채널'도 그립의 B2B(Business to Business) 고객이다.
임 본부장은 "자신의 채널에도 라이브커머스를 도입하고 싶지만,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한 파트너사에게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며 "그립이 가진 기술력 뿐만 아니라 라이브커머스와 관련한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고객사에게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그립의 목표는 유튜브나 틱톡에 버금갈 정도로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CPSO(Chief Partner Solution Officer)였던 임 본부장의 직책이 콘텐츠 운영 본부장으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라이브 뿐만 아니라 쇼츠나 스토리 등 여러 형태의 콘텐츠가 그립 내에서 생산되고 소비될 수 있게 하는 게 내년의 전략"이라며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는 모든 사람이 이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셀링할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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