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내신 상대평가와 고교학점제는 모순, 입시가 교육 흔든다

2023. 12. 2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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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는 불가분의 관계다. 입시는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숙지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가 올해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27일 확정 발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선택과목 없는 통합형으로 실시하고, 내신은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9등급을 5등급 체제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앞서 2021년 11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학습할 수 있도록 ‘고교학점제’를 2025년부터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미리 정해진 과목 시간표가 있는 게 아니라, 대학처럼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부 입시안은 이런 개정 교육과정의 의도와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치의 빈틈이 없어야 할 교육과정과 입시안이 삐걱거리며 따로 놀고 있다. 학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했지만 정작 수능을 획일화했다. 무엇보다 내신 상대평가가 고교학점제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이상 학생들은 높은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한 과목을 골라서 수업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절대평가로 시행하는 융합선택과목이 9개 마련됐지만 전체 과목(151개) 중 6%에 불과하다. 내신 산정 방식을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꾼 것이 그나마 변화지만 1등급을 받기 위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대입에서 중상위권의 내신 변별력이 떨어지고 내신의 실질 반영비율이 축소되면, 자율형사립고나 특수목적고 쏠림이 발생해 초·중학생들의 사교육 수요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등 교육과정 개편 논의를 시작한 2017년부터 미래지향적 대입제도 마련을 공언해왔다. 2021년 개정 교육과정 발표 이후로도 2년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새 교육과정에 따른 입시안은 수능에서 선택과목 유불리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수험생이 똑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핵심이 됐다. 미래 인공지능시대 가장 중요하다는 수학은 사교육 유발을 이유로 수능에서 출제 범위를 축소했다. 백년대계에 대한 고민이 없고 대증적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런 내용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기고, 2개월간 심의한 국가교육위원회는 거수기 노릇만 했다. 2022년 교육과정과 2028학년도 대입안은 모순이다. 꼬리인 입시가 몸통인 학교 교육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 교육 혼란과 사교육 증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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