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팔이’ 언론의 자괴감 또는 다짐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정유경 | 뉴스서비스부장
‘아내가 아이를 던졌는지, 남편이 아이를 던졌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보도를 지켜보던 한 기자 후배가 뉴스룸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탄절 아침부터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화마를 피해 아이를 지키려던 서른두살 남편은 숨지고, 아내와 두살, 7개월 된 두 딸은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슴이 저며와 차마 읽기 어려운 뉴스였습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날 비번이었지만, 그날 근무했던 다른 언론사 기자는 후배의 탄식에 뭐라고 답할 수 없었다며 고통스러운 마음을 전해 오기도 했습니다. 관련 ‘속보’들이 쏟아졌고, 사고 경황 중에 조금씩 다르게 전해졌던 사건의 전말이 정리되어 가는 과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앞서 알려진 것처럼 엄마와 아빠가 각각 아이를 안고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빠가 끝까지 남아서 아내에게 아이들을 던진 뒤 뛰어내렸다는 한 언론사의 ‘단독’ 보도도 나왔습니다. ‘속보’와 ‘단독’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사실이고 아닌지를 빠르게 분별하고 알리는 것도 기자의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보도에까지 ‘단독’이 달려 나오는 지독함에, 저도 그만 탄식했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겨레 뉴스서비스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뉴스서비스부’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 있겠습니다만, 보통 언론사에서는 온라인뉴스부, 디지털뉴스부라고 많이 부릅니다. 신문사의 콘텐츠를 디지털로 가공하고, 유통하는 일을 합니다. 제목을 달고, 취재기자가 붙여 보내온 사진을 바꾸기도 하고, 포털에서 언론사마다 할당하는 ‘채널’에 배치할 기사를 선별합니다. 기자의 취재 노력이 녹아 있는 기사들이 좀 더 많은 이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포털과 소셜미디어 등 뉴스 유통구조를 연구하고 지원합니다.
단독과 속보 경쟁은 언론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포털 환경이 되면서 더욱 치열해진 것 같습니다. 신문사는 밤새 뉴스를 정련한 뒤 일괄적으로 지면에 내보내왔지만, 디지털 환경에선 예전으로 치면 방송사들만큼이나 속보를 다루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한국은 포털에서 여러 언론이 경쟁하는 특수한 환경입니다. 외국 언론사 기자들과 디지털 변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이 한번에 여러 언론의 여러 기사를 편하게 보는 백화점식 뉴스 시장인 ‘포털’ 환경에 대해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들은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수많은 콘텐츠 제공사의 뉴스 중 일부를 독자들에게 노출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가중치를 언론사에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만, ‘단독’, ‘속보’, ‘영상’이 붙을수록 좀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는 구조로 보고 있습니다.
속보를 다투게 되면서 부정확한 1보들도 많아졌습니다. 사건·사고 같은 경우, 관할 공공기관들마저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내용이 알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꼭 언론사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누구나 개인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에스엔에스와 같은 ‘관심경제’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원 삼아 분열이나 불안을 추동하는 콘텐츠를 더욱더 많이 노출합니다. ‘유튜브 렉카’처럼 자극적인 제목으로 콘텐츠 돈벌이를 하는 업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언론인은 확인하는 게 직업입니다. 그래서 한겨레의 ‘속보’는 다소 늦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무겁게, 이름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고 보도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로는 속보를 붙이지 않기도 하고, 좀 더 많이 읽힐 것 같은 이야기라도 자극적인 제목보다 한번 더 눌러 쓰는 것을 택하기도 합니다. 언론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비극을 다루는 일이겠으나, 누군가의 비극을 헛되이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조회수로 매일 평가받고, 독자들에게도 부응해야 하는 일인지라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던 배우의 안타까운 소식이 ‘단독’ ‘속보’의 이름을 달고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품격을 잃지는 말자 다짐하는데, 한겨레 뉴스라서 찾아 읽어주시는 눈 밝은 독자님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힘을 냅니다. 새해엔 더 좋은 뉴스를 전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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