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 세계 청년들과 나누고 싶었죠”

강성만 2023. 12. 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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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영문 저작 ‘붉은 시대’ 낸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조선 사회주의 운동과 문화를 다룬 영문 저술을 최근 펴낸 박노자 교수. 박노자 교수 제공.

‘Red Decades’(붉은 시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 논객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최근 미 하와이대 출판부에서 펴낸 영문 저작이다. ‘1919~1945년 한국에서 운동과 문화로서 공산주의’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의 세번 째 단독 영문 저술로 2017년 이후 작성한 영어 논문에 몇 편의 글을 더했다.

“1980년대 후반에 한국 공산주의 연구가 비교적 자유로워지면서 임경석, 윤상원, 박종린, 전명혁 등 쟁쟁한 학자들의 한국 공산주의 관련 연구서가 나왔지만 영어로 접근 가능한 책은 1960~70년대 나온 이정식, 스칼라피노, 서대숙 교수의 책들 정도입니다. 이번에 영문으로 책을 내어 기존 연구를 보충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지난 24일 노르웨이 오슬로에 거주하는 박 교수에게 왜 영어로 먼저 책을 냈느냐고 이메일로 묻자 나온 답이다.

박 교수가 최근 낸 영문 저작 표지.

이 책은 저자가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시대”였다고 파악하는 이른바 전간기(1918~1939년, 1·2차세계대전 사이)의 한국 사회주의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 1부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과 파벌 투쟁의 양상, 공산당 활동 내용과 강령 등을 살피고 2부에서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관과 민족관, 대표적인 마르크시즘 철학자 박치우(1909~1949)의 삶과 사유 등을 들여다봤다.

박 교수는 이 저술에서 한국 사회주의 운동을 러시아와 독일, 중국 등 다른 지역 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특성을 고찰하고 또 마르크시즘 전수 경로와 같은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사상 학습의 실태도 세밀히 다뤘다. 같은 주제를 다룬 이전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일 듯하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기원 역할을 했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남만춘(1892~?), 김만겸(1886~1938)과 같은 재러조선인 2세의 활동과 영향을 러시아 국립 사회-정치사 아카이브(PGASPI)의 옛 코민테른(세계 공산주의 단체 연합체)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드러낸 점도 주목된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재러동포를 ‘원호’라고 하는데 토지도 있고 교육을 받은 원호 2세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 영향으로 일찌감치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이후 한국 초기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책에서 새로 밝힌 내용이 뭐냐는 물음에 저자는 경남 통영 출신의 사회주의 사상가 양명(1902~?)을 언급했다. “양명이 모스크바에서 살면서 각종 코민테른 잡지에 기고한 조선 관련 글들을 분석해 조선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양명의 위치를 새롭게 확인했죠. 1931년 경성제대 반제동맹 사건 등으로 알려진 강진이 나중에 북한을 이탈해 옛 소련에서 여생을 보낸 점이나 코민테른 간부 출신으로 북한의 유명정치인이었던 박정애가 알려진 것과 달리 ‘동방노력자공산대학’(모스크바의 공산주의 운동가 교육기관)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새로 밝혔어요.”

한국 고대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지난 7년 한국 사회주의 운동 연구에 몰두했다. 왜? “전간기는 현재와 닮은 점이 많아요. 자본주의의 위기적 상황이 감지된다는 게 그렇죠. 대중들의 상대적 빈곤화와 권위주의 정치의 귀환, 그리고 글로벌 패권의 위기와 기존 패권에 도전하는 열강들의 각축 등 현재 상황을 보면서 가끔 ‘1930년대가 돌아오고 있나?’ 자문할 정도이죠. 그 때문에 ‘대안’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장’이나 ‘시장’에 대한 환상이 많지만, 한국보다 신자유주의를 15년 먼저 도입한 미국, 영국에서는 지금 많은 젊은이들의 시대적 화두는 ‘21세기의 사회주의’입니다. 그들에게 조선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반성할 점과 배우거나 계승할 점을 알려주고 싶었죠.”

그렇다면 식민지 조선의 전간기는 왜 ‘붉은 시대’였을까. 그는 당시 조선과 중국,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 양태를 먼저 설명했다. “도심에서 시작한 중국 공산주의 운동은 1927년 장개석 극우 쿠데타 이후 농촌 중심으로 옮겨가고 일본 공산주의 운동은 대개 도심 중심이었어요. 이와 대조적으로 조선은 도심과 농촌을 같이 휩쓸었어요. 적색(공산주의) 노조만큼이나 적색 농민조합(농조)도 많았어요. 특히 함경도의 성진, 홍원, 명천 같은 지방에서는 적색 농조가 거의 ‘대안적 권력’처럼 부상해 일정 수준의 ‘권력’까지 행사했죠.” 이어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당시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은 민족혁명(조선 독립)과 민주혁명(민주공화국 건설 지향), 계급혁명(조선인 지주나 공장주를 향한 농민, 노동자들의 행동을 조직하는 혁명)을 굉장히 잘 결합한 운동이었기에 민족주의자 출신(예컨대 김일성 같은 개신교 민족주의 가문 출신)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근대적 지식인 그리고 사회 변혁을 원하는 대중들을 동시에 흡수할 수 있었죠.”

1919~1945년 한국 공산주의 연구서
1·2차대전 사이 ‘전간기’ 운동에 초점
“사회주의가 조선 도시·농촌 휩쓸어
민족주의자와 지식인·대중 함께 흡수”

러시아 국립 아카이브 자료 토대로
사회주의 사상가 양명 등 새로 발굴
독일·중국·러시아 관계 속 특성 고찰
“한국 사회주의 운동문화 특성은 교육”

그는 이번 책에서 한국 사회주의 운동 문화를 밝히는 데도 힘을 썼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주의 운동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교육이다. “적색 노조나 농조는 꼭 구성원들을 교육했어요. 공산주의 단체 간부나 지도자가 되려면 부단히 학습해야 했죠. 모스크바 유학은 아주 중요한 신분상승의 계기가 되곤 했어요. 교육, 학습이 절대적으로 중요했기에 이청원 같은 노동자 출신의 뛰어난 사학자가 공산주의 운동 안에서 내공을 쌓아 훗날 북한에서 학계로 진출할 수 있었죠.”

이번 책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이 훗날 남과 북 체제에 기여한 유산을 드러내는 데도 적잖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지금 가자 학살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물결이 서울을 덮곤 하는데요. 사실 팔레스타인 등 약소민족 운동의 상황에 대해 최초로 분석다운 분석을 한 한국인은 사회주의자 이여성이었어요. 1920~30년대 한국 사회주의자들에게 일차적인 연대 대상은 중국혁명이었죠. 한국에서 ‘국제 연대’ 담론은 그때 태어났어요. ‘복지국가’ 담론도 선구적으로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펼쳤죠.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에 반기를 들어 반전 운동을 전개한 것도 사회주의자들의 경성제대 반제동맹이었습니다. 지금도 반전 운동은 귀중하고 시급하죠. 한국의 진보적/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선구자 역시 사회주의자 허정숙이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허정숙이나 정칠성, 이덕요 같은 사회주의 여성들의 남녀평등론은 지금도 여성운동에 크게 참고할 만합니다.”

그는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삶의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여운형이나 박헌영, 양명, 주종건, 한위건처럼 유학을 하고 외국어에 능하고 저널리즘 등에 상당한 역량을 가진 이들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평생 특권 속에서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편한 길을 스스로 포기하며 가시밭길인 운동의 길로 들어선 것은 바로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공인’의 태도죠. 사익 중심의 신자유주의 욕망의 세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태도인데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면 이런 태도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좌파 운동의 밑바탕이 된 것은 민초들의 조직, 즉 적색 농조/노조나 학생 독서회, 청년회 등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조직술은 지금도 배울 점이 있어요.”

박노자 교수. 박노자 교수 제공

그가 이번 책에 한장을 할애한 마르크스 사상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박치우의 중요성에 대해 물었다. “박치우는 실천을 중시하고 에토스와 파토스를 매우 균형적으로 결합한 그 자신만의 철학 세계를 만든 사람입니다. 지행합일을 중시했다는 차원에서 박치우의 철학은 동아시아적 특색이 있는 마르크스주의였죠. 박치우의 전간기 민주주의 쇠퇴의 원인 분석, 권위주의와 불안의 시대로서의 1930년대에 대한 분석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파시즘의 철학적 기원에 대한 그의 분석이나 하이데거적인 실존주의 비판 등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의 퇴행적인 국수주의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민족문화 연구의 방법론을 강구했어요. 요즘에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작업을 이미 1930~40년대에 한 것이죠. 그런 대철학자가 죽고 나서 남북한 양쪽에서 잊힌 것은 남북한 철학 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다고 봅니다.”

박 교수는 마르크시즘이 지배적 이념이었던 옛 소련 출신이다. 지금 시대에도 마르크스주의가 의미가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옛 소비에트 마르크시즘은 스탈린의 보수적 전환 이후 교조화되어 생명력을 잃었어요. 하지만 교조적 마르크시즘이 아닌 진정한, 창조적 마르크시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마르크시즘은 현재 복합적인 자본주의 위기(무한 축적 시스템이 낳은 환경/기후 위기, 과소비와 과잉생산,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낳은 축적의 위기와 각종 투기의 번성, 주식이나 부동산 등 버블 형성, 패권을 둘러싼 전쟁 등)의 성격을 설명해주고 비자본주의적 미래의 전망을 보여줍니다. 비자본주의적 미래가 아니면 사실 기후 위기부터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특히 서방의 젊은층은 시간이 갈수록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북한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꿈꾼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물었다. 그는 요즈음 북한 서점에서 마르크스 고전 저작들을 구하기 힘들다고 책에 쓰기도 했다. “북한은 스탈린의 다소 보수적인 모델대로 진정한 의미의 변혁보다는 당 주도의 개발주의의 길을 선택했어요. 북한이 건설한 지극히 군사화된 당국가는 마르크스가 생각한 본래의 사회주의 이상과는 딴판이죠. 그런데 북한 혁명이 결국 국가/군대 건설로 이어지고 권위주의적인 개발주의로 흘러갔지만, 그 과정에는 해방적인 측면들도 없지 않아요. 일단 엘리트 교체가 이루어져 수많은 민초 출신이 당 간부나 지식인 등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1960년 무렵에는 무상 의료/교육과 노후 연금, 주택 배분 등 거의 완결된 복지 국가 시스템이 북한에서 태어났어요. 제3세계에서 처음이죠. 이런 성취에는 일제 시대 사회주의 운동 관련자들의 공로도 많아요. 그들 중 상당수는 김일성 중심의 새로운 체제에 맞지 않아 숙청 대상이 되었지만 백남운이나 박문규, 허정숙 등처럼 1920~30년대 거물 마르크시스트나 사회주의자들이 김일성 중심의 체제에 편입돼 활약한 경우도 없지 않아 있어요. 김일성 체제가 그 학식이 필요했던 지식인들의 김일성 체제에서의 생존율은 식민지 시절의 노동/농민 운동가들의 생존율보다 조금 높았어요. 후자를 보면 허성택이나 주영하, 오기섭, 정달헌 등처럼 잘 알려진 운동가들 대부분이 숙청에 희생당했어요. 권위주의적 당국가 시스템에 맞지 않았던 민중 운동가들이었다는 뜻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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