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안녕하셨습니까] 툭하면 먹통… 전자정부 1위 위상 와르르

팽동현 2023. 12. 27. 18: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24·나라장터 등 잇따라 장애… 11월까지 6차례 달해
IT업계 "터질 게 터진것"… 열악한 환경 근본적 개선 안돼
시간·비용 한계 맞물려 뚜렷한 해결책 없어… "지금이 기회"
사진=연합뉴스

불안한 공공IT시스템

전자정부로 대표되는 공공IT 강국의 면모는 어느새 사라졌다. 언제 또 끊길지 모르는 불안한 공공 IT서비스는 전 국민의 걱정거리가 됐다. 해를 넘어 거듭된 대형 공공 SW(소프트웨어) 사업 난항은 지난날 글로벌 전자정부 1위라는 성과를 무색케 한다. 전문가들은 20년간 급격한 기술발전으로 IT시스템의 중요성과 복잡성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국내 공공IT분야 시계는 과거 전자정부 초기 시절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한다.

◇반복되는 공공IT시스템 먹통…불편은 국민의 몫

잇따른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는 우리나라 공공IT의 민낯을 드러냈다. 주민센터 등 현장 공무원들의 행정업무 수행에 쓰이는 시도·새올 행정시스템에 지난달 17일 오전 사용자 인증 문제로 장애가 발생, 그 여파로 당일 오후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까지 멈추면서 전국 공공기관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되며 일대 혼란을 빚었다.

정부24 서비스는 이튿날 재개됐지만 시스템 전반이 정상화되기까지 56시간이나 걸렸다. 늦어도 수 시간 내로는 복구돼야할 국가 전산망임에도 그러지 못했고,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이 먹통이 됐을 때 정부가 보였던 날선 반응 때문에도 빈축을 샀다. 원인 규명이 없어 추측이 난무하자 네트워크 로드밸런싱을 맡는 L4스위치를 문제 삼았다가 나중에는 라우터 장비 문제로 결론이 나는 등 이후 대처와 해결 과정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불행히도 행정전산망 장애는 그 이후로도 이어졌다. 조달청 나라장터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시스템, 모바일신분증 서비스, e호조(지방재정관리시스템) 등 정부24 마비를 시작으로 11월 말까지 드러난 것만 여섯 차례에 달하는 장애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법원 전산시스템이 데이터 이관 과정에서 오류 발생으로 마비돼, 전자소송시스템 중단으로 일부 소송 일정이 미뤄졌다. 6월에는 학교 행정업무 처리에 쓰이는 교육부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4세대 시스템 개통 시 장애가 일어나 기말고사 관련 정보가 담긴 문항정보표가 유출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지난해부터 문제가 이어진 보건복지부 행복이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함께 대형 공공SW사업의 난항이 거듭된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IT업계는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열악한 IT서비스 사업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결과다. 새올시스템도 십수년째 쓰이며 노후화됐음에도 차세대 사업이 차일피일 밀리며 유지보수에 의존해왔다.

공공SW 사업은 유찰 비율이 매년 절반에 육박한다. 전자정부가 한창이던 2000년대 한때 전체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였던 공공SW사업은 현재 1%에도 못 미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공공SW사업 매출 비중이 20% 이상인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0.5%에 불과하다. 20% 이하인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6%인 것과 대조된다.

기획재정부 등 검토를 거치면서 30%가량 깎이는 것은 다반사고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일도 적지 않다. 여기에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개발자들의 몸값이 급등했는데 예산은 거꾸로 가고 있다. IT서비스업계는 공공SW사업 정당대가 지급을 부르짖고 있다.

사업 예산이 한정돼 있으면 그 감소폭에 맞게 과업범위가 조정돼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요구사항이 불명확하게 주어지기 일쑤다 보니 사업 수행 과정에서 외려 과업은 늘어나기만 한다. 그렇다 보니 프리랜서 등 단기적인 '가성비' 인력 수급에 기대게 되고, 사업을 마쳐도 기술이나 노하우를 내재화하기 어렵다. 대형 사업 장애와 지연이 반복되는 출발점이다.

때문에 체계적인 분석·설계와, 이를 마친 시점에서 과업범위를 확정짓는 기준·절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명무실한 감리도 함께 지적된다. 현재는 제3자가 아니라 발주기관이 감리업체를 선정, 수주자의 사업 이행을 점검하는 데만 쓰이고 있다. 피치 못한 순환근무든 행정편의적 갑질이든 간에 담당자 관리역량이 부족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감독이 부재한 것이다.

◇해묵은 고질병, 새해에는 바뀔까

고질병임에도 시간과 비용 한계와 맞물려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이다. 공공IT 분야의 현실을 알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업계에서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이참에 본격적인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올해 들어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혁신추진단이 SW진흥법에 따른 공공SW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ICT분야 규제혁신 과제로 지정, 과기정통부가 개선안을 내놓았다. 현재 700억원 이상 사업에 대해 대기업의 참여를 다시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신기술 도입·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기존 고질병 해결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손해를 보더라도 좀 더 버틸 수 있을 대기업을 행정편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조문증 경상국립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공공 IT시스템 중요성과 규모가 커지고 복잡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SW 관련 제도는 아직 과거 SI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의 시장 참여를 확대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고 SW산업 분야별, 규모별 참여자들 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 특히 발주부서의 IT역량이 과거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하다"며 "정부가 위기를 직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시점이다. 기존 SW산업 제도를 대국민 서비스, 산업 생태계, 글로벌 경쟁력을 두루 고려해 원점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를 계기로 범정부 대책 TF(태스크포스)를 발족,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중심으로 내년 1월 초에 구체적인 공공IT분야 개선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부 협의를 마치고 현재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권헌영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정보보호분과장(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은 "AI와 데이터 중심으로 바뀌는 디지털플랫폼정부 모델을 기존 계약·사업 방식으로는 다 받아들일 수 없다. 국가 디지털 전환 방향성에 맞춰 전면 개편돼야 한다"며 "그동안 정부가 발주하면 민간이 수행했던 형식에서 벗어나 민간이 직접 투자하고 보상을 받는 형태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