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선균(48)이 27일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강남 유흥업소 실장(속칭 ‘마담’)의 자택에서 여러 종류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선균은 24년 차 배우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1기로 입학해 연기를 전공하고, 1999년 가수 비쥬의 ‘괜찮아’ 뮤직비디오로 데뷔했다. TV에 모습을 드러낸 건 2001년 MBC 시트콤 ‘연인들’에서다. 20대 때는 크게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2005년에는 KBS ‘연애’, MBC ‘태릉선수촌’ ‘후’ 등 단막극에 주로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갔다.
20대를 무명배우로 지낸 그는 2007년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가 대박을 치며 대중에 이름을 알린다. MBC 드라마 ‘하얀거탑’과 ‘커피프린스 1호점’이다. 그는 올바른 신념을 가진 의사 최도영과 자상한 음악가 최한성 역을 맡아 존재감을 알렸고 주연 배우로 올라섰다. 그해 이선균은 MBC 연기대상에서 미니시리즈부문 황금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이선균은 어떤 캐릭터도 마다하지 않았다. 드라마 ‘파스타’(2010)에선 셰프 차림으로 “봉골레 파스타 하나”를 외쳤고, ‘골든타임’(2012)에선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나선 늦깎이 인턴 의사로 활약했다.
주조연급으로 출연한 10여편 넘는 드라마 가운데, 그의인생작으로는 2018년 방영된 tvN ‘나의 아저씨’가 꼽힌다. 이 드라마에서 이선균은 세상에 기댈 곳 없던 이지안을 돕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정 많은 중년 박동훈 역할을 맡았다. 이선균은 지난 9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작을 뽑아달라는 말에 “최근엔 ‘나의 아저씨’가 좋았다. 40대를 대변하는 작품이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선균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이기도 했다.
‘쩨쩨한 로맨스’(2010), ‘체포왕’(2011), ‘화차’(2012),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끝까지 간다’(2014) 등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2015년에는 영화 ‘끝까지 간다’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연기력을 뽐낼 수 있는 작품이면 어떤 장르도 마다하지 않았고, 상업영화 만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스타 배우가 된 뒤에도 그는 홍상수 감독의 독립·예술영화 ‘옥희의 영화’(2012), ‘우리 선희’(2013) 등에 출연하며 홍상수 사단이 됐다.
올바른 의사, 버럭 요리사, 찌질한 비리 형사. 이런 종횡무진 연기 변신 덕분에 수많은 필모그래피에도 이선균이란 배우를 정의하는 수식어가 많지 않다. 대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건 독특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국내에서 잘나가던 스타 이선균도 세계 무대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그러던 중 봉준호 감독에게 연락이 왔고, 2019년 영화 ‘기생충’의 박 사장 역으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젠틀하지만 기택 가족에 대한 무시가 깔린 인물을 연기했다. 운전기사로 일하는 기택을 향해 킁킁거리면서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하는 식이다. 이 영화는 그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받았다.
이선균은 지난 7월 유튜브 채널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났을 때 태연했던 척했지만 첫 만남이 신인 때처럼 떨렸다”며 비화를 털어놨다. 당시 봉준호 감독이 “선균 씨와 같이 하고 싶은데 너무 어려 보여서 고민이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감독님 저 지금 옆에 새치 장난 아니에요”라며 함께 작품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드러냈다고 한다.
월드스타가 된 뒤에도 그의 연기 도전은 이어졌다. ‘법쩐’, ‘아주 사적인 동남아’, ‘킬링로맨스’ ‘잠’ 등 다수의 작품에서 열연했다.
필모 탄탄히 쌓은 24년차 연기 인생에 금이 간 건 지난 10월 마약 투약 혐의에 연루되면서다. 이선균은 경찰 첫 소환 당시 소변을 활용한 간이 시약 검사에 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모발)·2차(겨드랑이털) 정밀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는 세 차례의 경찰 조사에서 일관되게 마약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27일 10시 30분쯤 종로구에 있는 와룡공원 인근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그가 있던 차량 조수석에서는 번개탄 1점이 발견됐다. 그는 앞서 유서를 작성하고 집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균은 영화 ‘탈출:PROJECT SILENCE’와 ‘행복의 나라’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두 영화는 유작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