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기준 최초로 명문화했지만 … 예외 조항 탓에 여전히 모호
경영참여·타계열사 출자 않고
채무보증·자금대차 등 없으면
대기업 총수지정 피할수 있어
쿠팡 김범석 예외적용 가능성
공정위 "확인 필요, 예단못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총수) 규정을 바꾸면서 사실상 동일인제도 취지를 스스로 허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추상적이었던 동일인 기준을 구체화했는데, 기존 총수들은 동일인 지정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늘어났고, 논란을 일으켜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됐던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아예 동일인 지정에서 피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동일인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절차를 정한 '동일인 판단 기준 및 확인 절차에 관한 지침'을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지침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을 그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본다'는 동일인 판단 일반 원칙을 유지했다.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에 대한 판단은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내·외부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5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다.
동일인제도는 특정 기업집단이 자본을 활용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해 1987년 도입했다.
2021년 쿠팡이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개정 논의가 본격화했다.
당시 정부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계 미국인인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인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었고, 이 같은 논란은 지난 4월 대기업집단 자료에서 수년째 총수로 지정돼온 OCI그룹의 이우현 부회장이 미국 국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심화했다. 경쟁당국이 제도 개선에 착수한 배경이다.
이번 개정안으로 외국인 동일인 지정으로 불거질 수 있는 통상 마찰 소지는 해당 기준을 동일인의 국적과 무관하게 적용함으로써 차단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또 공정위가 동일인 선정 절차 이후 이를 기업집단에 통지해 확인하도록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도 마련해 기업집단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동일인 판단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수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침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또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자연인 총수가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마련해 제도의 합리성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도 기업집단 범위에서 자연인이 지배하는 국내 법인이 빠지지 않고 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경영 참여·출자 등도 단절돼 있는 경우 법인 동일인을 지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사익편취는 동일인이 자연인인 경우에만 적용돼,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인 총수가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고 해도 총수 본인이나 친족과 관련된 출자·자금 거래 등 지정자료 제출 의무도 없다.
법인 동일인 변경을 요청할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공정위는 법인 동일인 변경요건을 충족하는 대기업집단은 많지 않다는 판단이다. 지난해 5월 기준 82개 대기업집단의 동일인 중 자연인은 72명, 법인 10개다.
현행 조항대로라면 제도 개선의 시작점이었던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의장은 현재 최상단회사인 쿠팡Inc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김 의장 동생 부부가 보유하고 있는 24만주가량의 쿠팡Inc 주식은 쿠팡Inc가 미국 시장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라 '국내 계열회사 출자'를 금지한 조항도 충족한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도 이 같은 이유로 김 의장의 쿠팡 동일인 지정에 대해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다만 김 의장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회사에 재직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은 있다. 등기 임원이 아니라 예외 조항을 충족할 가능성이 높지만 공정위는 세부 내용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정식 임원으로 재직하는지 여부가 맞는다"면서도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는지는 구체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쿠팡 측은 "창업자 동생이 임원으로 재직 중인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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