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공무원 집에 가라"… 아르헨, 한방에 5000명 감축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3. 12.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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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 대통령 취임 2주만에 경제 대수술
인구 대비 공무원 비율 7.4%
계약직 위주로 구조조정 시작
복잡한 수입절차 대폭 줄이고
물가 잡으려 고액권 발행 추진
국민들 시위하며 반발하지만
시장선 밀레이 처방에 환호
증시 사상최고치 찍고 안정권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취임한 지 2주 만에 과감한 경제 수술을 단행하면서 국민은 벌써부터 등을 돌리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해 대조를 보인다. 취임 연설에서부터 "앞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밀레이 대통령은 국민의 부정적 여론에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과감한 긴축재정 정책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26일(현지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은 올해 신규 채용된 계약직 공무원에 대한 해고 법안에 서명하고 이를 관보에 게재했다.

이번 법령에 따라 2023년 1월 1일 이후 채용돼 12월 31일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공공 부문 계약직 공무원은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번 공무원 해고 법안으로 최소 5000명 이상의 공무원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한다. 아르헨티나 공무원노조(ATE)에 따르면 공무원이 7000명 이상 해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마누엘 아도르니 아르헨티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그 이전부터 재직 중인 국가공무원의 고용 여부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해고되는 공무원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수십 년간 아르헨티나 공공 부문은 만성적 정실주의와 엽관제 폐해 때문에 비대해지면서 재정적자, 부채 확대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아르헨티나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공공 부문 근로자는 341만3907명에 달해 전체 인구 4600만명의 약 7.4%에 이른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에서 보이는 2%대 대비 3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의 2.2%가 연방정부 공무원 급여로 지출되고 있어 정부 예산에서 공공 부문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북유럽 국가, 일본, 독일과 비슷한 수준에 달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밀레이 행정부는 복잡했던 수입 절차를 간소화해 자국 내 수입 물가 완화 조치도 실행했다. 루이스 카푸토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수입 사전허가제(SIRA) 폐지를 발표하며 "정부 관료는 더 이상 누가 상품을 수입할지, 수입하지 않을지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무원 해고와 수입 제한 해제 조치는 밀레이 대통령이 발표한 대대적인 경제 개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지난 10일 취임 직후 밀레이 대통령은 정부 부처를 기존 18개에서 9개로 축소하는 법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경제정책은 환율 평가절하였다. 선거 기간 중 자국 통화인 페소화를 버리고 달러화를 도입할 것이라고 공약했던 그는 하루 만에 페소화를 50%나 평가절하했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와 자국 통화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지난 20일에는 모든 국유기업의 민영화, 수출입 자유화, 각종 가격 통제 및 교통·에너지 보조금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300개가 넘는 경제 개혁 패키지를 공개했다.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 2주 만에 추진한 대대적인 경제 개혁 정책에도 여전히 아르헨티나 경제난이 해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헨티나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60.9%를 기록하면서 연말까지 연 130%가 넘는 초인플레이션 국면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고액권 화폐 발행까지 검토하며 고물가 대응에 나서고 있다. 라 나시온 등 현지 매체는 25일 정부가 2만페소와 5만페소 고액권 지페를 새로 발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존 아르헨티나 최고액권 지폐는 2000페소로, 공식 환율로 2.48달러(약 3200원)에 불과하다. 대선 공약으로 페소화 폐기와 달러화 채택을 내세웠던 밀레이 대통령이 당분간 페소화 평가절하를 유지하면서 신규 고액권 지폐 발행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허리띠를 졸라매자 고물가의 고통을 견뎌왔던 국민은 신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반발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긴축재정을 위해 내년 1월부터 교통비 등 정부 보조금이 삭감될 것으로 알려지자 살인적 물가와 정부 재정 개편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시위를 벌였다.

반면 밀레이 대통령의 경제 개혁 시도에 금융시장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페소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직후 외환 시장에서 달러당 1055페소까지 치솟던 비공식 환율은 지난 21일 975페소에서 안정세를 찾고 있다.

당시 블룸버그가 집계한 아르헨티나 정부 발행 채권도 밀레이 행정부의 경제 개혁 패키지가 발표된 뒤 만기 2035년 달러 채권을 기준으로 달러당 35센트 선에 다가서며 2년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아르헨티나 주식 시장의 대표 지수인 메르발지수는 지난달 21일 밀레이 대통령 당선 직후 79만2443.19로 22% 넘게 폭등한 데 이어,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12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안정권에 들어섰다.

아드리아나 두피타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충격 요법인 페소화 평가절하와 정부지출 삭감이 인플레이션 심화와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 급등을 막을 것이란 중앙은행의 확신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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