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오랜 투병 끝에 굳은살 생기지만…편견으로 상처입는 건 한순간”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2023. 12. 2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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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성철 올캔코리아(All.Can Korea) 대표

최성철 대표는 “올캔코리아는 암환자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접근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암환자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작가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 중의 한 문구이다. 우리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이는 곧 우리 사회 속에 편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편견이 객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세워졌으면 슬프지 않겠다. 하지만 편견은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집단 심리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한 번 발생한 편견은 깨지기 쉽지 않으며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암환자인 것을 밝힐 바엔 침묵을 지키겠다.”

기자는 의료분야를 담당하며 많은 암환자를 만나봤다. 젊은층부터 고령층까지 모든 세대가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사회복귀를 통해 경제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젊은층과 중장년층은 암투병 자체를 숨겨버린다.

아픈 것 자체가 죄가 되는 사회.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암은 이제 불치병이 아니다. 적극적인 치료를 이어가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잠재적 ‘환자’로 취급하며 그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암은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즉 우리도 언젠가 걸릴 수 있는 것이 ‘암’이며 완치 가능하다. 여기 암보다 두려운 편견을 깨려는 단체가 있다. 바로 ‘올캔코리아(All.Can Korea)’이다. 올캔(All.Can)은 ‘암, 치료를 넘어 일상으로’라는 슬로건하에 2016년도 브뤼셀에서 처음 시작한 비영리단체(NGO). 현재 전 세계에 21개 지부가 있으며 2020년 아시아에서 처음 발족했다. 최성철 올캔코리아 대표를 만나 암환자의 심리적 지지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 올캔코리아는 암환자의 심리적 지지에 집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암환자 단체에 약 15년 정도 몸담았다. 초기에는 암치료에 대한 정보가 전무해 심리적 문제를 돌아볼 겨를 자체가 없었다. 현재도 우리나라의 암치료는 대부분 암세포 제거에 집중돼 있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이 치료로 어떤 영향을 받는지, 치료가 끝난 이후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사회 복귀에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적었다.

- 올캔코리아에서 3년간 대표를 역임했는데.

올캔코리아 발족 시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암치료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사한 바 있다. 가장 광범위하게 토로하는 어려움이 ‘심리적 어려움’이었다. 이에 올캔코리아는 암환자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접근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지난해 연구용역을 진행, 현실적으로 암환자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사업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한다.

올캔코리아는 암환자단체 단독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라 환자단체와 유관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등 공익활동을 최초로 진행했다. 무엇보다 정부기관이 아니라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주도해서 진행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또 암환자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는 점이 단체의 특징이다.

- 암시민연대 대표도 역임하고 있는데 두 단체의 차이는.

암시민연대는 개별 암환자들이 회원이다. 반면 올캔코리아는 암 관련 환자단체와 헬스케어 전문가, 보건복지전문가, 법률전문가, 파트너사 등이 회원이다. 또 암시민연대는 암환자와 관련된 모든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올캔코리아는 암 치료과정에서의 비효율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중 급여 관련 부분은 제외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캔코리아가 현재 암환자 심리적 지지와 관련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는 여러 사업 중 하나이다. 암 치료환경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하지만 국가별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암환자들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어려움은.

연령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고령층일수록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크고 저연령층일수록 직장이나 결혼 등 사회복귀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 올캔코리아가 올해 중점적으로 진행한 사업은.

지난해 연구용역을 진행한 바 있다. 암환자가 ‘동료지원가’로서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암환자에게 멘토링할 수 있도록 하는 ‘암환자 심리지원을 위한 환자간 지지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는 올캔코리아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암환자단체 내에서 운영하는 각각의 소모임에 그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자조모임을 운영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 자조모임이 꽤 많다고.

암환자 자조모임이 워낙 많다 보니 좀 더 안전하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조모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암환자 심리적 지지를 위한 암환자단체 자조모임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의 경우 익명성 보장 등 10가지 정도의 가이드라인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반면 암환자 자조모임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부재한 상황이다. 자조모임을 진행할 때 상담심리 전문가들이 참석해 자조모임을 참관하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개발되면 다른 암환자단체나 지자체에서 자조모임을 진행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제공할 계획이다.

- 자조모임 가이드라인 개발 시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가.

자조모임 부작용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심리적 지지를 얻는 것보다 오히려 절망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모임에서 환자들은 본인의 치료경험을 얘기한다. 그런 개인의 경험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다. 따라서 올캔코리아에 참여하는 환자단체에서는 모임 진행 시 개인이 말하는 치료경험담이 재현될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올캔코리아의 가이드라인은 내년 2월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 암환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됐는지.

여전히 어렵다. 최근에 느낀 사실이 하나 있다. 젊은 환자일수록 오히려 노년층보다 자신이 암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는다. 차별과 편견 때문인 것 같다. 일률적으로 연령층에 따라 구분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신상에 대해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경향은 오히려 노령층에서 더 많다고 느낀다.

오래 투병한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치료의 끝은 없다’고 토로한다. 암세포를 없애는 치료는 끝이 났을지 모르지만 암으로 인해 변한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슬기롭게 암과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또 아픈데 혼자 참지 말기 바란다.

- 치료환경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사실 재활병원이 전문병원으로 바뀔 때 암재활도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재활병원은 뇌혈관질환이나 치매 쪽에 집중돼 있다. 암환자의 재활치료의 유효성이 입증된 사례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암도 재활이 필요한데 지금은 체계화된 재활프로그램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다.

- 임기가 올해까지다. 다음 대표에게 건네고 싶은 제언은.

우리나라와 해외의 비영리단체는 운영에 있어 차이가 있다. 올캔코리아의 본부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데 우리나라와 환경이 많이 다르다. 본부는 비영리단체로 인증받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반면 국내는 아직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지 못해 활동에 제약이 있다. 따라서 국내 환경에 맞는 비영리단체의 요건을 우선 갖춰야 올캔코리아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대표가 되는 분을 열심히 도와 올캔코리아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헬스경향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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