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의 저널리즘책무실] 기계학습 시대, 사람 기자의 저널리즘
[저널리즘책무실]일을 많이 할수록 더 똑똑해지는데다 지치지도 않는 인공지능이 24시간 기사를 써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지어 기사의 질이 사람 기자가 쓴 것과 비슷하다면?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얼마 전, 딸아이가 뜬금없이 신문을 찾았다. 스무살이 넘도록 신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였다. 책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며 틈틈이 신문이라도 봐야겠다고 했다. 이렇게 기특할 수가! 내 방에 있던 신문을 얼른 갖다 바쳤다. 그 뒤로 며칠간 방문 앞에 신문을 갖다 놓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그런데 뭔가 미심쩍었다. 방문 앞에는 한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신문 더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작심 하루’였던 거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없고 불편해서.”
씁쓸하지만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스마트폰만 켜면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아닌가. 5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도 스마트폰에 자꾸 눈길이 가는데,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야 말해 무엇하랴. 종이신문 같은 올드 미디어가 디지털 시대 ‘시선 뺏기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유의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포털과 유튜브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의 성장이 전통적인 미디어 산업의 위기를 불러왔다면, 최근에는 기자들에게 실존적 고민을 안기는 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챗지피티(Chat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그것이다. 물론 날씨나 스포츠 경기 결과 등을 전하는 속보성 기사를 인공지능이 쓰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술 문외한인 내가 봐도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챗지피티의 발전 속도를 보노라면, 머잖아 인공지능 기자가 사람 기자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일을 많이 할수록 더 똑똑해지는데다 지치지도 않는 인공지능이 24시간 기사를 써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심지어 기사의 질이 사람 기자가 쓴 것과 비슷하다면?
지난 21일 한겨레말글연구소는 ‘인터넷에서 인공지능으로, 소통은 어떻게 달라지나?’라는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말글연구소 연구위원인 김진해 경희대 교수(국문학)의 ‘인공지능 시대의 신문 글쓰기’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이 학교에서 진행한 수업을 다룬 세 신문의 기사를 보니 내용과 흐름이 비슷해 놀랐다고 했다. 챗지피티에 비슷한 정보를 주고 쓰게 한 글을 비교해 보여주며, 이러다간 사람 기자가 인공지능에게 추월당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인공지능이 작성한 글이 사람 기자의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얘기였다. 재미와 감동이 없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 기자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김 교수는 저마다의 고유성이 드러나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형화된 구성에서 벗어나 ‘엔(n)개의 문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기사를 통해 모종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문제는 그런 기사들의 효험이다. 인공지능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사람 기자만의 독창적인 기사, 예컨대 소설적 재미를 주는 내러티브 기사를 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독자들이 그 기사의 가치를 인정해줄까. 정보의 효율적인 전달에 최적화된 ‘붕어빵 기사’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등이 수행한 ‘뉴스 탁월성 지수 개발을 위한 탐색적 연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대학원생 독자 150여명에게 일주일에 한 개씩 가장 마음에 드는 기사를 고르게 한 뒤, 그들이 제출한 비평문을 분석해 ‘좋은 기사’의 특징을 도출해냈다. 연구의 결론은 이렇다.
‘독자들은 명쾌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기사 구성이나 문장을 선호하고, 기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적 변화에 민감하며, 기사를 읽고 난 뒤 이해, 깨달음, 성찰을 얻을 때 탁월한 기사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김 교수의 제안과 일맥상통한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기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포털 중심의 뉴스 생태계를 꼽는다. 뉴스 유통시장의 ‘슈퍼 갑’인 포털이 속보와 가십성 기사 위주로 뉴스 서비스를 하다 보니, ‘빨리, 많이’가 언론사들의 핵심 콘텐츠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선 품이 많이 들어가는 내러티브 기사나 심층 기획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 기계’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빨리, 많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박재영 교수는 말글연구소 토론에서 ‘아날로그’와 ‘인간적인 저널리즘’으로 인공지능에 맞서자고 했다. 취재의 원형, 곧 ‘발품 취재’로 돌아가고, 모든 사건을 인간의 이야기로 풀어내자는 제안이다.
최근 언론사들이 프리미엄 콘텐츠를 내세워 ‘탈포털’ 실험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언론사 자체 플랫폼에서 ‘좋은 저널리즘’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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