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매장 90%를 먹거리로 채웠네...소고기·회도 원하는 대로 주문하는 롯데마트 은평점
생선·소고기도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
"매장 떠난 소비자 되찾자" 마트업계 사명
음식만 잔뜩 보여 여기가 마트인지 슈퍼마켓인지 모호하다. 고등어 초밥부터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까지 없는 게 없다. 고심 끝에 메뉴를 고르면 거기에 곁들일 800종 가까운 와인이 눈에 밟힌다. '칼립소 망고' 같은 이색 열대 과일에도 자꾸 시선이 간다.
롯데마트가 서울 은평구 진관동의 은평점 지하 1층을 '그랑 그로서리'(Grand Grocery)로 새 단장해 28일 문을 연다. 10월 22일부터 부분적으로 공사를 진행해 약 2,975㎡(약 900평) 매장의 90%를 신선식품부터 가공식품까지 다양한 식료품으로 가득 메웠다.
정식 개장 하루 전인 27일 오전 10시쯤 찾은 매장에선 직원들이 매대를 채우느라 바삐 움직였다. 입구 왼편에 자리한 직영 빵집 뒤로, 식품들만 40m 넘게 진열돼 있다. 뿌리째 판매하는 샐러드용 채소, 갓 튀긴 치킨, 당일 썬 생선회 등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된 음식이 주를 이뤘다. 이른바 '롱 델리 로드'다.
맞은편 신선식품 코너는 유럽 전통시장 디자인을 본떠 만들었다. '계절과일'이라고 쓰인 돌출형 간판이 목재 매대 높이 달려있고 백색 등 대여섯 개가 샤인머스캣 열대 과일 등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중화 요리, 회, 소고기... 먹고 싶은 대로 고르면 '즉석 포장'
차별화 지점으론 '고객 맞춤형 식사'를 내걸었다. '요리하다 키친'에선 미국식 중화 요리 17가지를 입맛대로 선택해 '나만의 도시락'을 만들 수 있다. 요리 두 개를 고르면 5,990원, 네 개를 고르면 1만900원이다. 마라새우·블랙페퍼 삼겹살·난자 완스엔 추가 요금(500원)이 붙는다. 이용객이 자주 찾는 메뉴는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안테나숍'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요리하다 스시'도 비슷하다. 키오스크 기기에 원하는 횟감과 부위, 중량을 입력하면 주문한 대로 회를 즉석에서 썰어 포장해 준다. 손질하는 동안 매장을 계속 둘러볼 수 있게 조리가 끝나면 휴대전화에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50여 가지 초밥을 포함해 기존 마트에선 보기 힘들었던 회덮밥도 판다.
롱 델리 로드 끝자락에 다다르자 약 40㎝ 크기 미국산 소고기 두 덩이가 냉장고 안에 매달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숙성 시작일(12월 5일)이 적힌 표가 붙었다. 대형마트 최초로 설치된 드라이 에이징 전용 숙성고에서 3주가량 숙성한 고기다. 마찬가지로 고객이 종류와 두께 중량을 고르면 요청한 대로 잘라 포장해준다.
오프라인 판매 역량 집약체
생수도 '쿠팡'으로 주문하는 시대다. 식료품 구매 채널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대형마트 3사가 가진 무기는 '재료의 신선함'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2월부터 일부 점포들을 먹거리를 강화한 '메가푸드마켓'으로 리뉴얼하고 있다. 인천 간석점을 시작으로 전국 25개 매장까지 늘렸다. 이마트는 2020년 월계점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50여 개 점포를 재개장했다. 식품 부문을 확대하면서 비식품 부문엔 만화 카페·스크린 골프장 등 다양한 업체를 들여놔 가족 단위 고객에게 체험 기회를 늘리겠다는 목적도 담고 있다.
롯데마트가 이번 재개장에 나선 건 "오늘 식사 메뉴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박준범 점장)다. 롯데마트 은평점은 서울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과 이어져 있다. 은평뉴타운엔 3040 신혼부부와 60대 이상 노년층이 많이 산다. 퇴근길 간단히 들러 사 갈 수 있는 가공식품과 직접 요리할 때 필요한 신선한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특히 높았다고 한다. 박 점장은 "실제로 오전 11시와 저녁 시간대 매출이 가장 높다"면서 "퇴근 후 쇼핑하는 분들을 위해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고 말했다. 보통 마트엔 신선식품·가공식품·의류·생활용품 네 가지 품목이 25% 비율로 들어가지만 롯데마트 은평점은 매장 90%를 먹을거리로 채운 이유다.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이사는 "그랑 그로서리는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롯데마트의 그로서리 역량을 모두 끌어다 모은 공간"이라면서 "차별화된 먹거리 쇼핑 경험을 통해 넘버원 그로서리 마켓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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