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칼자루 쥔 韓… 친윤·영남권 물갈이 폭풍전야

불체포특권 포기 자발적 참여
인적 쇄신 현실화는 지켜봐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국회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사심없이 총선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 당의 주류인 친윤(친윤석열)계와 영남권 의원들의 험지 또는 불출마를 이끌어 낼 명분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인적 쇄신이 현실화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위원장은 27일 국회로 출근하던 도중 기자들과 만나 '전날(26일) 자신의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당내 불출마가 확산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출마를 하셔야 할 분은 오히려 출마해야 한다. 불출마 자체가 미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법무장관을 하면서 국회가 대단히 중요하고, 국회의원이 돼서 입법 활동을 통해 시민에 봉사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며 "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개인의 바람보다는 우리 전체의 승리를 위해 도움이 되는 길을 찾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말로만 '헌신하겠다, 헌신하자'고 하면 다들 그냥 말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재임시부터 비례대표나 험지 출마, 대구·강남 등 텃밭 출마가 예견됐다. 그러나 총선 승리를 위해 비대위원장인 자신부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전면적인 인적쇄신의 명분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 이후 맥이 끊긴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희생 결단을 압박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구 달서갑이 지역구인 홍석준 의원은 이날 한 공중파 라디오에 나와 "지역구든 비례든, 그 뜻이 제가 볼 때는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크고 무섭다"며 "대구뿐만 아니라 전 지역에 있어서 불안하지 않다고 하는 국회의원은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TK(대구·경북)는 보통 한 40~50%를 하니까 물갈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기대감도 보인다.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은 "계파와 선수 막론하고 당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분위기로 흐를 것"이라며 "전망이 밝다"고 했다.

한 위원장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기로 약속하는 분들만 공천할 것"이라는 메시지에 화답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권오현(서울 중구 성동갑), 김기흥(인천 연수을), 김보현(김포갑), 김성용(송파병), 이승환(중랑을), 이창진(부산 연제) 등 14명의 당 예비후보 및 출마 예정자들은 이날 '불체포특권 포기의 공동 선언문'을 서약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들은 한 위원장 연설 직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발적으로 공동선언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비판적인 의견도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이 포지션으로 총선을 치르고 자기만 불출마한다니 굉장히 실망스럽고 생뚱맞다. 험지 지역구에 출마하든 했어야 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의원도 "'내가 내려놨으니까 너도 내려놓으라'는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데, 반드시 이런 움직임이 다른 의원들의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며 "개별 의원들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위원장의 불출마는 많은 사람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면서 "다만 친윤·영남권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다른 의원들의 불출마나 험지 출마로 이어질 지 예단하긴 이르다"며 "공천관리위원회 단계까지 가봐야 윤곽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