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 장기화에 국내 기업들 손실 커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현지에 생산시설을 만들거나 운영해온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선박 건조 계약을 해지하거나, 자동차 공장을 팔고, 가전제품 공장 가동 등이 중단된 실정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공조 움직임에 따라 손실이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최근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계약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5척 중 10척에 대한 선박 블록과 장비 제작을 중단했다.
삼성중공업 대변인은 전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박 5척의 건조를 위한 블록 및 장비 제작은 막바지 단계이고, 나머지 10척의 선박에 대해서는 블록과 장비 제작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계약은 아직 취소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즈베즈다 조선소는 이달 중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특별지정제재 대상(SDN)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SDN에 오르면 해당 기업의 자산 동결 및 외국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즈베즈다가 제재 대상에 오르면 삼성중공업은 건조 마무리 단계에 있는 5척의 LNG 운반선에 해당하는 중도금 수천억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워 10척의 선박 제작을 멈춘 지 좀 됐다”며 “취소 가능성을 포함해 향후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도 러시아와 총 3척의 LNG 운반선 건조계약을 맺었지만 전쟁 직후 러시아 측에서 중도금을 내지 못해 5월부터 세차례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앞서 낸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러시아 측은 한화오션을 상대로 중재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오션은 “중재 절차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며 “현재 건조 중인 LNG 운반선 3척의 새로운 선주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 1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공장(HMMR)을 현지 자동차 조립업체 아트 파이낸스에 한화로 단돈 14만5000원에 매각키로 했다. 이 공장은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3월부터 부품 조달이 어려워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차는 2년 내 되살 수 있는 ‘바이백(buy back)’ 조건을 내걸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실제로 약 14만원에 공장을 넘겨야 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경향신문 취재에 따르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도 현지 생산시설에 대해 철수 여부를 검토 중이지만, 뾰족한 결론을 못 내린 상황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삼성전자 TV 생산법인과 LG전자의 가전 생산법인도 전쟁 직후부터 현재까지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지분 75%를 보유한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의 곡물수출 터미널 역시 전쟁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전쟁 직후 항만 봉쇄로 터미널 운영이 일시 중단되었다가 지난해 5월부터 육로 운송을 통해 옥수수, 호밀, 보리 등을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수출했다. 2021년 물동량 76만t 대비 2022년에는 절반 이상이 감소한 31만t을 기록했다.
반면 현지화 전략과 함께 식량을 비축하려는 전쟁특수로 판매 실적이 올라간 기업들도 있다.
2003년 러시아에 진출한 오리온은 ‘국민 간식’으로 떠오른 초코파이의 판매 호조로 전년 대비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26.6% 늘어난 998억원, 영업이익은 37.6% 증가한 160억원을 달성했다. 팔도의 용기형 라면 ‘도시락’ 역시 ‘국민 라면’으로 통하며 러시아 라면시장 점유율 60%를 넘어섰다.
러시아 현지 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러시아에 남아있는 한국 기업은 약 159곳으로 전쟁 전인 2020년보다 약 10여 개 기업만이 현지에서 철수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업체 관계자는 “그간 러시아 시장이 효자 시장 역할을 했던 터라 러·우 사태에도 최대한 기존 영업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며 “제재와 무관한 식품, 담배와 같은 소비재 기업은 판매가 더욱 잘 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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