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담벼락 훼손 현장 직접 가보니

2023. 12. 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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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가 있으니까 경복궁이 더 웅장해 보여.”

광화문 앞 월대가 복원된 지 두 달이 좀 넘었다. 경복궁을 찾는 사람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뭔가를 한 듯 뿌듯하다. 몇 년간 광화문광장 시민추진단으로 활동해 그런지, 광화문광장 일대는 내게 좀 더 애착이 가는 곳이다.

월대가 복원된 현장.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흐뭇했던 마음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16일 경복궁 담장이 훼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아주 흉측한 모습으로. 더욱이 이번 문화재 훼손 사건은 연달아 일어나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경복궁의 역사적 가치는 따질 수 없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이에게 추억을 준 곳이다. 난 예전에 외국 친구들과 자주 경복궁을 찾았다. 그 담장을 따라 친구 아이 유모차를 밀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월대 이야기를 하니, 다음에 한국을 찾으면 다시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젠 씩씩한 중학생이 된 아이와 함께. 그런 곳이 저렇게 훼손되다니, 너무나 안타깝다.

훼손된 담장 옆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기가 거긴(문화재 훼손된 곳)가 봐.”
“어휴 진짜 한숨만 나온다.” 

추위를 뚫고 현장을 가봤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언제쯤 복구될지 여러모로 궁금했다. 담장은 추위로 공사가 지연되는 통에 가림막이 쳐 있었다. 파란색 가림막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전과 달리 한 번씩 가림막을 쳐다보면서.  

문화재 테러하면 가장 먼저 숭례문 방화사건이 떠오른다. 사실 문화재 테러는 이 이후로도 있었다. 울주 언양읍성 낙서 및 흥인지문 방화. 비단 큰 사건만도 아니다. 몇 년 전에는 경주에서 한 남성이 고분 위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술 취한 여대생들이 첨성대에 올라가 셀카를 찍었다. 문화재가 훼손되면 복구도 어렵지만, 손실은 몇 배가 넘는다. 

낙서된 문화재 훼손 현장.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낙서 추가 훼손 사건 이후 경복궁 담장 외부 전 구역에 경찰을 배치했고, 4대 궁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다. 또한, 훼손된 담장은 보존처리 전문가들이 스팀 세척기, 레이저 장비와 약품 등으로 복구에 나섰다. 또 현재 경복궁 담장에 설치된 14대의 CCTV를 20대로 늘리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파란 가림막이 보는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한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우리가 알아둘 사항이 있다. 문화재에 낙서하는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훼손된 문화재를 원상복구해야 한다. 또 문화재 근처에서 흡연 시,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문화재 주변에서 건설할 때는 경관과 환경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혹 매장문화재를 발견한 경우, 7일 이내 관할 기관에 신고해야 하며, 그 가치에 따라 1억 원의 포상금까지도 받을 수 있다.

전쟁통에 미국 은행에 맡겨 보호한 문화재 말 탄 사람 모양 흙인형(왼쪽), 미국 군인이 구해낸 관세음보살(오른쪽).

언젠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전시가 있다. 6.25전쟁 당시 문화재를 지켰던 노력과 문화재를 복원하는 과정을 다룬 전시다. 전쟁 통에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피난을 갔다. 몇 차례에 걸쳐 문화재를 기차로 옮겨가며 부산 광복동 관재국 창고에 보관했다. 또 미국 은행으로 옮기기도 했다. 문화재 복원 과정도 만만찮았다. 온·습도를 맞추고 엑스레이 등을 통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이런 노력을 봤다면, 섣불리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경복궁 내부에는 더 많은 낙서가 있다고 한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경찰관들이 서 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도 한국방문의 해다. 문체부는 2024년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유치 및 관광 수입 32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멋진 관광지는 커녕 부끄러운 모습을 낱낱이 보이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마음복원소’. 고민에 위안을 주는 콘텐츠다.

씁쓸한 마음으로 경복궁을 나왔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 복도에서 참여한 콘텐츠도 생각났다. 안내판에는 ‘마음복원소’라고 적혀 있었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격려를 해주는 참여형 온라인 콘텐츠다. 직접 해보니 문화재들이 다양한 고민을 들어주며 위안을 줬다. 박물관이 문화재를 복원하듯, 다친 사람들 마음에 위로를 건넨다는 콘셉트란다. 하지만 마음복원소로 치유를 줄 문화재는 지금 더 큰 상처를 입고 있다.

정책기자단|김윤경otterkim@gmail.com
한 걸음 더 걷고, 두 번 더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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