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은’ 올해의 야생동물들? 다 이유가 있었답니다
2023년 우리를 놀라게 한 해달, 범고래, 사향돼지
올해 미국 산타크루즈 해변에서는 해달이 사람의 서프보드를 가로챘고, 지브롤터 해협에서는 범고래들이 호화 관광 요트를 공격했다. 미국 남서부의 사향돼지가 골프코스를 헤집어 수만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 2023년, 드디어 자연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과학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최근 올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흥미로운 사건들을 되짚었다. 올 한 해 국내외 온라인에서는 야생동물이 인간의 생활 반경에 나타나 독특한 소통을 보여준 사례가 많았다. 매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 자연의 치유 시기였다면, 2023년을 자연이 인간의 지배에 반기를 든 한 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동물은 평범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에 대한 보복? 동물에겐 그저 ‘삶’
동물들은 왜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지난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해변에서는 해달이 인간의 서프보드에 지속해서 접근하거나 아예 보드를 빼앗아 타는 일이 반복됐다. 해달의 이름은 ‘841’. 이 해달은 수족관에서 태어난 뒤 2020년 야생 방사된 개체였다. 해달 841이 서프보드나 사람에 관심을 갖는 모습이 종종 관찰됐지만, 지난 7월부터 접근 빈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당국은 841이 야생성을 잃었다고 판단해 포획에 나섰으나 야생에 사는 동물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른 뒤, 다시 나타난 841의 품에는 작은 새끼 해달이 안겨있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841의 행동 변화가 임신에 따른 호르몬 변화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었는데 추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사향돼지 ‘자벨리나’가 골프장을 파괴한 것도 동물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의 세븐캐년 골프클럽은 지난 10월 자벨리나가 골프장 페어웨이를 온통 헤집어 수만 달러 상당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자벨리나는 겉모습이 멧돼지와 흡사한 페커리과 유제류 동물인데 사막에 서식하며 큰 송곳니로 선인장, 식물 뿌리, 지렁이, 곤충 등을 먹이로 삼는다. 이 골프장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지만 자벨리나에게는 ‘지렁이 사냥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골프장 파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누리꾼들은 “이제 이곳은 (자벨리나 덕분에) 2000홀 규모의 골프코스로 거듭났다. 재야생화(Rewilding)는 멈추지 않는다”는 농담과 함께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팀자벨리나(#teamjavelina)라는 해시태그를 공유하기도 했다.
‘문명 파괴’ 오히려 응원받은 동물들
‘문명 파괴’를 했지만 응원을 받은 동물은 또 있다. 지브롤터 해협의 범고래 가족이다. 지난 6월 미국 공영 라디오 엔피알(NPR)과 외신들은 최근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에서 범고래가 사람이 탄 배를 망가뜨리는 일이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박의 선장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범고래들은 무리로 요트 후미에 접근해 방향타를 물어뜯거나 아예 뜯어가 버렸다.
범고래들은 왜 요트를 노리게 된 걸까. 당시 사람들은 주로 범고래가 인간에 대해 적의를 갖고 배를 파괴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관광용 요트가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환경 오염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해양포유류 전문가는 오히려 고래들이 이런 행동이 ‘유행’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미국 범고래 행동연구소 모니카 윌랜드 쉴즈 소장은 “지금까지 범고래들은 4척의 배를 망가뜨렸는데 모두 방향타만 공격했다. 배들이 침몰한 이유도 방향타 손실로 인한 침몰이었다. 고래가 만약 배의 침몰을 목적으로 해 공격했다면 선박 몸체를 들이박아 더 큰 피해를 줬을 것”이라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말했다. 그러면서 “고래가 방향타에 관심을 갖는 것은 비교적 새로운 행동이지만 생물학자들은 범고래들 사이에 다양한 놀이 문화를 관찰해왔다”고 했다. 앞서 1987년 범고래들은 죽은 연어를 모자처럼 머리에 이고 헤엄치는 유행을 선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바다코끼리의 안락사…“인간의 행동 반성해 봐야”
그러나 이러한 야생동물과의 소통이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류학자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아담 존슨 교수는 “앞으로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자원이 점점 부족해짐에 따라 동물과 인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사람들은 야생동물이 인간에게 대항하는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진정 동물의 편에 설 준비가 되었는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노르웨이 오슬로의 해안에 나타난 바다코끼리 ‘프레야’가 인간과의 잦은 접촉으로 안락사 되어야 했던 사례를 들었다. 프레야는 몸무게가 600㎏에 달하는 암컷 바다코끼리로, 오슬로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보트에 올라타거나 해안에서 햇볕을 쬐는 등의 행동을 보여 관심을 모았다. 사람들은 프레야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모여들었고, 프레야도 수영하던 시민에게 접근하는 쫓아가는 행동을 보였다. 당국은 결국 바다코끼리가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안락사 결정을 내렸다. 존슨 교수는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가 동물과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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