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PAR와 핸디캡으로부터의 자유

방민준 2023. 12. 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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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즐겁자고 들판으로 달려 나간 대부분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즐겁기는커녕 유별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맛봐야 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기대치와 실제와의 괴리, 연습을 게을리 한 자신에 대한 실망, 꾸준한 연습에도 불구하고 진척이 없는 것에 대한 절망,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정신력, 동반자에 대비되는 형편없는 스코어에 따른 자기비하 등 그 이유와 까닭을 찾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불가(佛家)의 108번뇌를 원용해 골프가 안 되는 이유가 108가지나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이니 골프 자체가 고(苦)의 덩어리인 줄도 모르겠다. 



필자 스스로 골프의 고해(苦海)를 헤매다 보니 즐거워야 할 골프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이유와 원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다. 



 



40여년에 가까운 긴 항해 끝에 그 원인이 파(Par)에 대한 오해와 핸디캡(Handicap)의 굴레가 아닐까 하고 깨닫는다.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최대의 실수가 바로 파에 대한 오해다. 파란 그 홀을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공략했을 때 낼 수 있는 규정 타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골퍼들은 자신의 실력에 관계없이 파를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한다. 



규정 타수가 생긴 배경을 살펴보면 현대의 골퍼들이 얼마나 가당찮은 자기학대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코스 설계가들이 코스를 만들면서 각 홀의 규정 타수를 정할 때 기준으로 삼은 것은 아마추어 골퍼가 아닌 골프선수였다. 즉 프로선수가 기준이었다.



골프선수가 실수 없이 코스를 현명하게 공략해서 성공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기준타수인데 이를 19세기 초까지 '보기(Bogey)'라 불렀다. 보기란 말은 당시 인기 있던 오페레타의 주인공 '보기맨(Bogeyman)'에서 따왔다고 한다. 즉 선수가 최선을 다해서 얻을 수 있는 스코어가 보기이고 버디(Birdie)는 신의 은총이나 자연의 축복이 있어야 가능한 귀한 선물로 받아들여졌다. 



 



공식적으로 기준 타수에 대한 용어가 탄생한 것은 1890년.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이른바 '3S'라고 해서 'Standard, Scratch, Score'란 용어를 만들었다. 줄여서 'SSS'라고도 한다. '핸디캡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기준타수'란 뜻이다. 그러나 'SSS'보다는 '보기(Bogey)'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기준타수를 뜻하는 파(Par)란 용어는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탄생했다. 영국의 골프가 미국에 상륙한 뒤 20여 년 뒤인 1908년 미국골프협회(USGA)가 '동등하다'는 뜻의 '파(Par)'를 기준타수를 나타내는 용어로 채택했다. 



이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영국의 골퍼가 미국에서 경기를 하면서 파를 하고도 영국 관습대로 보기를 했다고 하는 바람에 스코어를 손해 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골프선수가 성공적으로 코스를 공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코어인 '귀한 파'를 보통 골퍼들은 마치 자신이 응당히 내야 하는 스코어로 받아들인다. 파보다 한두 타 더 치면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인식, 분노에 싸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바보 멍청이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골프 장비의 개발과 많은 연습으로 처음 규정 타수가 생겨났던 시대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파란 골프선수가 실수 없이 홀 아웃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스코어인 것만은 변함없다. 
 



선수들에게 기준이 되는 파를, 연습도 별로 하지 않고 라운드 횟수도 적은 아마추어 골퍼가 자기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런데도 대다수 주말 골퍼들이 파를 자신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즐거워야 할 라운드가 괴롭고 짜증나고 후회스런 라운드로 변하는 것은 바로 파에 대한 이런 오해 때문인 것이다.



 
파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는 편리한 도구가 핸디캡(Handicap)이다. 핸디캡이란 용어는 골프란 본질적으로 자기 기준으로 펼치는 게임이라는 철학에서 탄생했다. 



핸디캡의 어원은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은 친구 셋 이상만 모이면 술집으로 달려가 술잔치를 벌이는 게 관습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사나이들의 열린 가슴은 술값을 계산할 때도 그대로 드러나 각자 제 몫을 내는 네덜란드 사람들과는 달리 쩨쩨하게 굴지 않았나 보다. 



 



일행 중 누군가 "자, 이제 그만 마시고 술값을 내지."라고 말하면 누군가가 모자를 벗어들고 "핸드 인 어 캡(Hand in a cap)!"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면 모두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모자 속에 집어넣는데 일정한 액수가 정해져 있지 않고 각자 주머니 사정에 따라 내면 되었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를 모르면서 모두 자기 형편에 맞게 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공평하고 마음 편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모자 속에 쪽지를 넣어 제비뽑기를 해 표시가 있는 쪽지를 뽑은 사람이 술값을 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공평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런 어원의 핸디캡 제도를 골프에 도입했다는 것은 골프의 신사도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허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보완할 수 있도록 점수를 접어준다는 것은 골프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평생 운동으로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른 스포츠에선 나이나 체력의 우열, 연습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이미 승패의 결과가 예견되지만 상대방의 취약점을 참작해주는 아마추어 골프에선 고수와 하수가 만나더라도 게임이 성립된다. 다른 스포츠에선 약자는 어쩔 수 없이 패자의 쓰라린 맛을 봐야 하지만 핸디캡이라는 절묘한 룰이 존재하는 골프에선 강자라도 언제나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고 약자라고 해서 늘 진다는 법도 없다. 항상 '붙어볼 만한 경기'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핸디캡은 만인이 편안 마음으로 골프를 즐기도록 해주는 가장 민주적인 경기 룰인 셈이다.



핸디캡의 정신을 제대로 깨닫는다면 골프가 결코 간난신고의 고해가 아닐 수 있는데도 대다수 아마추어 골퍼들은 핸디캡의 굴레에 묶여 괴로움을 자초한다. 



 



티잉 그라운드 위에서 "핸디캡을 더 달라" "못 주겠다"든가, "왜 엉터리 핸디캡을 대느냐?" "핸디캡도 컨디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느냐?"는 등의 시비가 자주 일어날 정도로 핸디캡에 대한 정확한 개념도 실종되었다. 내기할 땐 핸디캡을 높이고, 친선게임을 할 땐 핸디캡을 낮추는 등의 고무줄 핸디캡도 존재한다. 



 



정확한 핸디캡을 산정하는 것은 꽤 까다롭다. 코스의 난이도나 티 박스의 위치 등을 감안하는 약간 복잡한 공식이 있는데 골프협회나 골프장에 누적된 스코어카드 10매 이상을 제출하면 산정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몇 번의 라운드 결과를 바탕으로 스스로 핸디캡을 결정하는 게 통례다. 



 



이렇다 보니 상황에 따라 제시하는 핸디캡도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자존심 탓인지 자신이 고집하는 핸디캡은 객관적 실력보다 낮추는 게 일반적이다. 



기준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니 당연히 기대치와 실제 스코어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고통의 씨앗은 여기서부터 싹튼다. 



 



더군다나 코스별 난이도의 차이, 잔디 종류의 차이, 지형의 차이, 티 박스의 위치, 그날의 기상조건 등에 따라 스코어 차이는 엄청나다. 프로선수라도 어떤 코스에선 4라운드 합계 두 자리 수 언더파를 기록하는가 하면 다른 코스에선 오버파로 허덕이기 일쑤다. 



프로선수도 이런데 아마추어가 자신만의 '고고한' 핸디캡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골프를 제대로 즐기려면 냉철하게 자신의 기준을 세워 라운드를 평가하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가령 90대 전후를 치는 보기플레이어라면 각 홀의 규정타수보다 한 타 많은 보기가 자신의 기준타수다. 보기가 자신의 파인 셈이다. 기준타수보다 한 타 많은 보기를 했지만 자신에겐 파나 마찬가지이니 '나이스 보기'라고 할 만하다.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초보라면 더블 보기나 트리플 보기가 기준타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는 초보 골퍼는 거의 없다. 



이렇듯 파의 굴레에 얽매이다 보니 만족한 라운드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고수들의 기준인 기준타수를 자신의 기준타수로 오해하고 엉뚱한 핸디캡을 머릿속에 담아두는 탓에 골프가 즐거운 날이 드문 것이다. 



 



골프의 고해에서도 즐거움을 맛보려면 잘못된 파에 대한 인식, 자신만의 핸디캡에서 벗어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오는 봄에는 파나 핸디캡으로부터의 자유를 시도해보자.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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