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토종 플랫폼 기업의 '가능성'을 자를 것인가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에 높은 곳에 살면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고집하는 걸 빗대어 설명하는데 자주 등장한다.
우리 사회는 급변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사실 내일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선한 의도로 공동체가 간다는 믿음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동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통제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이 혼란한 현대사회가 나아가는데 있어 하나의 사회신앙이 아닐까 싶다.
만일 공동체의 나아갈 방향을 어느 한 집단이나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사회라면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사보다 그 엘리트집단의 판단이 우수하다는 생각과 권한의 위임이 있어야 할 것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복잡한 사회는 어느 한 집단의 의사가 옳다고 의제하기에는 너무나 예상이 어려운 사회라는 점이다.
이럴 때는 다수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해 방향을 정하는 것이 그나마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사회의 문제를 구성원들이 참여해 논의하는 방식은 비단 그것이 민주적 방식이어서 뿐만 아니라 좋은 결론을 내고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중요하고 필수적인 방법이 돼야 한다.
최근 공정위는 플랫폼을 공정화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유럽식 법안의 제정을 발표하였다. 그간 공정위의 '온라인 플랫폼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이 법안의 제정에 섣부른 입법에 회의적이어서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일방적으로 진행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당장 산업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언론과 학계의 전문가들도 모두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토론과 숙고가 생략된 채 진행되는 움직임에 모두 큰 걱정을 하고 있어 보인다.
무엇 때문에 공정위는 이런 급한 행보를 보일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플랫폼의 속성상 결국 독과점이 생길 것이며 그들의 횡포가 예상되는데 행정력은 느리니 미리 주홍글씨를 써놓고 감시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 시장 상황에서 특정 플랫폼이 혼자 독과점하는 일은 벌어지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쓰던 다음 메일이 네이버 메일로 옮겨가고,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누구나 사용하던 네이버 검색은 구글과 유튜브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쇼핑은 국내외 업체가 이미 치열하게 경쟁중인데 왜 경쟁이 더 촉진돼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더구나 중국 업체들의 도약은 곧 플랫폼 시장에서 큰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이 시장은 국경이 없는 글로벌 영역이어서 누가 독과점인지 정하기가 어렵다. 플랫폼경쟁 촉진법 상 정부 논리는 시장 획정으로 독과점 기업을 정한 뒤에 이들을 집중감시하겠다는 것인데, 시장 획정이 어려우니 정량적 정성적 기준을 어림잡아 우선 정해놓고 규제하겠다고 한다.
이 방식의 비합리적임에 경악을 금치 못하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몇 개를 정해 침대에 눕히면 결국 성장하지 못하고 발이 잘려나가는 것은 국내의 몇 안되는 소중한 토종 플랫폼이 될 것은 자명하다.
스타트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스타트업이 어느정도 성장하면 집중 견제를 받게 되고, 이렇게 성장에 제한이 있는 기업에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며 반문한다. 소상공인들도 피해를 보게된다. 그들은 플랫폼이라는 배를 타고 같이 이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동반자들이다. 배가 침몰하는데 무슨 영업과 생존이 가능하겠는가.
소비자와 국민들이 감내해야할 불편함은 더 큰 문제다. 국내 플랫폼들이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로 성장에 방해를 받는다면 그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각 종 편의와 후생은 후퇴할 것이고 결국 더 불편하고 비싼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플랫폼경쟁 촉진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크면 규제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가 지금도 통할리는 만무하다. 이미 우리는 공정거래법을 운용하고 있고 명확히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들에 대한 감시와 법적용이 이루어 지고 있다.
현대 디지털사회에서는 그 무엇보다 기업을 견제할 수 있는 건 법과 정부가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와 국민이다. 플랫폼이 잘못하게 되면 바로 소비자의 선택은 다른 대안으로 이동한다. 지금껏 그래왔다. 굳이 정부가 나서서 판단을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자율규제와 시장 정화는 이미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경제를 장악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자국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자칫 그나마의 상대적 경쟁력과 가능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규제법안을 플랫폼 산업에 종사하는 구성원들의 참여와 숙고도 덜 한 채 지금 추진하는 것은 정말로 자해행위에 가깝다. 혹여나 정쟁중인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보지 않고 회기말 졸속으로 논의가 되어버린다면 통탄할 사람들은 산업계와 국민들이 될 것이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shpark@kinternet.org
〈필자〉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에서 법학 석사를 취득한 후 네이버에서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컴투스, 게임빌 법무총괄 이사로 지냈다. 2018년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방송통신위원회 규제심사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정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후 규제 완화, 글로벌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 인터넷 플랫폼 활성화 도모 등 국내 인터넷산업의 선순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LG U+, 서울서 5G 속도 KT 제쳤다…SKT 1위 유지
- [단독]교통카드 BIN 8자리 변경에 대형사업자 반발…1년 후 수도권 대중교통 대란 우려
- AI로 진화한 '삼성 푸드' 생태계, 미래 주방 청사진 제시
- [디지털시대 전자파안전]〈하〉한국, 전자파 안전관리 고도화로 산업·인체·국가 안전 강화
- 애플 자체 개발 와이파이 칩, 아이폰17 탑재 힘들어
- 크림반도 공격한 우크라, 러軍 상륙함에도 '순항 미사일'
- 위기의 국산PC, 'AI 특화 데스크톱'으로 부진 탈출 총력
-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생성형 AI 도입 안한 기업은 도태될 것”
- 김홍일 방통위원장 후보 청문회…검사 이력 두고 적격성 공방
- '미래차 특별법' 첫 설명회 새해 1월 열린다…전기차·자율주행·수소차 등 인재 육성